“2024년 연말에는 특수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연휴 때 쉬지 못하더라도 살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명절 연휴 기간에도 오전 7시께 경기 평택시의 한 골목에 위치한 한식 전문 음식점 주방에서 분주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강경현 씨(42·가명)는 평소 같았다면 가족을 위해 명절 음식을 준비하며 설렘으로 하루를 시작했겠지만, 대신 손질한 재료를 정리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는 “다들 최장 9일 연휴라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지만, 저희 같은 자영업자는 연말에 벌지 못했던 돈을 메꾸기 위해 설에도 가게를 열어야 한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강씨의 가게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큰 타격을 받았지만 꿋꿋하게 버텨왔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은 매출 회복을 더디게 했고, 여기에 지난해 연말 각종 사건·사고는 그에게 또 다른 위기로 다가왔다.
강씨는 “연말은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큰 매출 기회인데, 사건들 때문에 송년회 같은 모임이 취소되면서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면서 “설 연휴 특수라도 없으면 가게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한탄했다.
용인시에서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점주 이민재 씨(37)도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 그는 “물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포기해야 하지만, 연말과 연초에 손님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설 연휴라도 가게를 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요즘은 명절 음식을 덜 하고 배달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다”며 “설 연휴가 오히려 매출을 올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등 대형 사건들의 여파로 송년회와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연말 특수를 기대했던 자영업자들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고 가게 문을 여는 선택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내수 부진으로 경기가 얼어붙은 데다 각종 모임도 탄핵 분위기 탓에 위축된 모습을 보였으며, 정치적 혼란이 커지면서 공공기관에서도 최대한 연말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연말 특수가 사라지고 매출 감소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설 연휴를 마지막 희망으로 삼고 있다.
실제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최근 자영업자 107명을 대상으로 ‘설 연휴 영업 계획’을 조사한 결과, 5명 중 4명이 연휴 중 일부 기간 혹은 내내 운영하며 영업을 쉬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설 연휴에 매장을 운영하는 이유는 ‘조금이나마 수익을 내기 위해서’가 35.7%(복수응답), ‘긴 연휴로 평소보다 매출·손님이 늘어날 것 같아서’가 34.5%로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와 사건 사고로 인한 소비 위축은 단순히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연말 소비가 주춤한 것은 경제 전반의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라며 “정부 차원의 소상공인 지원 대책뿐 아니라 지역 단위에서의 소비 촉진 캠페인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