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칸영화제] 안드레이 즈비아귄체프 ‘미노타우르스’
프랑스 칸영화제는 세계 영화의 가장 뜨거운 현장이자 지금 이 순간 세계인이 열광하는 시네마의 준거점입니다. 제79회 칸영화제 현지에서 칸 황금종려상 후보인 ‘경쟁 부문(In Competition)’ 진출작과 관련한 소식을 밀도 있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불륜 이야기는 이제 너무 진부하다. 생은 냉혹해서, 불륜보다 더 큰 비극이 삶의 주변부를 맴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In Competition)에 진출한 안드레이 즈비아귄체프의 ‘미노타우르스’는 다소 뻔해 보이는 불륜 이야기로 그야말로 ‘걸작’을 만들어냈다. 올해 올해 제79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작품이 있다면, 아마도 이 영화가 아닐까 싶다.
‘아내와 외도한 남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강에 수장시키는 이야기’로 현대사회의 도덕적 파산을 정확하게 간파해내는 영화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 신화 속 반인반수 괴물인 ‘미노타우르스’를 차용해 내용적인 흥미와 의미적인 밀도까지 동시에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가능할 듯하다. 19일(현지시간) 칸영화제 주행사장인 팔레 드 페스티벌(축제의 궁전)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미노타우르스’ 월드 프리미어 상영에서 이 영화를 살펴봤다.
‘미노타우르스’ 줄거리는 이렇다. 중견회사 대표인 글렙은 성공한 사업가다. 지위와 부를 모두 거머쥔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다. 아내 갈리나는 아름다운 외모로 남편 글렙의 곁에 선다. 하지만 글렙은 행복하지 않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보낼 ‘징집 병력’을 회사에서 차출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징집 대상자를 회사별로 내놓으라”는 시(市)의 지시 앞에서, 글렙이 ‘어떻게 내 손으로 사람을 전쟁터에 보내는가’란 도덕적 갈등에 휩싸인 건 아니다. 글렙은 징집 후의 회사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 숙련된 직원을 전쟁터로 보내면 회사 이윤이 줄어들 것이 분명해서다. 그는 편법을 쓰려 한다. 숙련공 대신 신규 인력을 고용한 뒤, 이들을 그대로 전쟁터로 보내려는 것.
불행의 두 번째 이유는, 그에겐 너무 소중했던 아내 갈리나의 외도 때문이다. 아내가 불륜 중임을 직감한 글렙은 부하 직원을 시켜 갈리나의 뒤를 밟게 하고, 그 결과 갈리나가 포토그래퍼 안톤과 내밀한 관계임을 알게 된다. 갈리나는 안톤의 작은 스튜디오로 가서 낮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게 일상이었다. 오후에 외도가 예정돼 있으면 갈리나는 아침부터 콧노래를 불렀다.
글렙은 안톤의 스튜디오를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간다. 살의 없는 방문이었고, 발걸음과 표정의 분위기는 ‘슬픔’에 가까웠다.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린 글렙을 보고 상황을 인지한 안톤은 그에게 문을 열어준다. ‘남편과 불륜남’은 어색한 공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려 한다. 그때 안톤이 찍은 갈리나의 나체 사진, 그것도 자신에게 보여준 적 없는 환한 미소를 띤 아내의 벗은 몸을 본 글렙은 그 자리에서 안톤을 살해한다. 육체적 관계를 넘어 두 사람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시체 처리가 관건이다. 이 과정이 대단히 흥미로운 스릴러로 채워져 있는데, 그는 고생 끝에 안톤 시신을 강물에 처박는다. 글렙의 범행은 탄로나게 될까. 형사들이 글렙과 갈리나의 집을 방문하는 대목에선 극의 긴장감이 최대치가 된다.
그러나 영화 ‘미노타우르스’는 단순한 치정 서사가 아니다. 글렙은 ‘상처 입은 피해자’인 척 행동하고 있지만, 도덕적으로 무너져 있는 건 바로 그 자신이어서다.
글렙은 안톤을 살해하고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간다. 그는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는 일에 능숙하다. 아울러 전쟁터에 보낼 병력을 자기 손으로 뽑아야 하면서도 이 전쟁의 당위성에 대한 고민이 없다. 공적인 위치에서든 사적인 자리에서든 글렙은 윤리적으로 붕괴된 인간이다. 그는 안톤을 죽이고도 무표정해질 수 있고, 누군가를 전쟁터에 보낼 수 있다. 따라서 ‘미노타우르스’는 치정의 형식을 빌려 현대사회의 민낮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하려면 ‘미노타우르스’ 신화를 되새겨야 한다. 미노타우르스는 대개 ‘미궁에 갇힌 괴물’로 이해된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감금된 비극적 괴물’이 아니라, 인간을 제물로 요구하는 존재가 미노타우르스다. 신화에 따르면 젊은 남녀 14명이 미노타우르스에게 바쳐졌다고 한다. 이들은 미궁 안에 갇히면 길을 잃고 미노타우르스에게 잡아 먹힌다.
미노타우르스는 이 영화에서 글렙이 차출을 요구받는 ‘직원 14명’의 숫자와 동일하다. 글렙은 손실을 막기 위해 신규 인력 14명을 고용한 뒤 이들을 전장으로 보내버리는 무서운 계획을 갖고 있다. “임금 두 배”를 약속한 뒤 전쟁터로 보내버리려는 것이다. 머리 위에 난 뿔이 없어도, 뼈까지 씹어 먹을 듯한 이빨이 없어도 현대인은 충분히 괴물임을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미노타우르스’는 1969년 영화 ‘부정한 여인’의 리메이크라고 전해진다. 아내의 외도를 확인한 남편이 내연남을 죽이는 영화인데, 안드레이 즈비아귄체프는 반 세기 전의 영화를 가져와 이를 피의 전쟁이 진행되는 현대사회에 접목시켰다.
영화 곳곳에는 전쟁 병력을 모집하는 포스터, 기차에 실려 전장으로 보내지는 탱크 등이 나온다. 전쟁터의 포연과 총성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전쟁의 ‘뒷면’을 배경처럼 보여주는 영화는 충분히 공포스럽다.
‘미노타우르스’의 칸영화제 수상 결과는 24일 새벽(한국시간)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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