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같은 통념을 뒤집을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본 홋카이도대학교 연구진이 자포니카 쌀의 지질(지방) 성분을 정밀 분석한 결과,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건강 관련 물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푸드 리서치 인터내셔널(Food Research International)’에 게재됐다.도정한 쌀의 85% 이상은 전분이다. 단백질과 지방은 매우 적다. 특히 지방은 전체의 약 2% 수준에 불과해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하지만 이번 연구는 바로 그 2%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일본에서 재배되는 쌀 56종(흑미 등 유색미 포함)을 분석해 총 196가지 지질을 확인했다. 그 가운데 ‘하이드록시 중쇄 지방산 에스터(FAHMFAs)’라는 물질은 쌀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 물질은 기존 연구에서 염증은 줄이고 대사 건강 개선 가능성이 제기돼 온 생리활성 지방 성분이다.
이는 쌀이 단순히 에너지만 공급하는 식품이 아니라 몸속 염증과 대사 과정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을 시사한다.이번 연구에서 특히 주목받은 것은 흰색이 아닌 다른 색을 띠는 쌀, 유색미다. 흑미·적미·녹미 등이 대표적이다.실제 FAHMFAs는 갈색미와 녹미 품종에서 특히 풍부하게 발견됐다.
이번 연구에서는 인지질의 한 종류인 ‘N-아실-리소포스티딜레탄올라민(LNAPEs)’도 확인됐는데, 특히 흑미에 많이 포함돼 있었다.
전반적으로 유색미 품종은 건강에 유리한 지질 성분 구성이 더 풍부한 특성을 보였다. 또한 전분 분해 속도 역시 더 느린 경향을 보였다. 이는 유색미가 혈당과 대사 건강 측면에서 더 유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실제 소화과정을 모사한 실험도 진행했다. 그 결과, 유색미는 전분이 더 천천히 분해되고, 식후 혈당 상승도 백미보다 완만한 경향을 보였다. 특히 흑미가 가장 낮은 추정 혈당지수(eGI)를 보였다. eGI는 음식이 혈당을 얼마나 빠르게 올릴지를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측한 수치다. eGI가 낮을수록 식후 혈당이 급격히 오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이러한 결과는 흑미를 포함한 유색미가 식후 혈당 급상승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가 쌀 속 지질 성분이 전분과 상호작용하면서 소화 효소 작용을 늦추고, 전분 분해 속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쌀 속의 소량 지방 성분이 혈당 반응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쌀을 무조건 줄이기보다 어떤 종류의 쌀을 먹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현미와 흑미·적미·녹미 같은 유색미 품종은 건강과 관련된 다양한 생리활성 지질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건강 측면에서 더 유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연구는 실험실 기반 분석으로 실제 인체에 미치는 장기 효과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쌀, 알고 보니 건강식”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쌀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단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아울러 이번 연구는 특정 건강 관련 기능성 성분을 강화한 벼 품종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관련 논문 주소: https://dx.doi.org/10.1016/j.foodres.2025.117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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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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