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뱀을 마주한 인간은 두려웠다. 뱀의 생김새, 일부 뱀의 공격적인 성향, 그리고 치명적인 독은 인간에게 본능적 두려움을 갖도록 했다.
국립민속박물관 ‘만사형통(萬巳亨通)’ 전시품 ‘땅을 지키는 열두 수호신 가운데 여섯 번째 뱀신’. (사진=국립민속박물관) |
인간은 뱀을 두려워하면서도 신성한 존재로 여겨왔다. 뱀이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는 모습과 땅속과 땅 위를 오가는 뱀의 모습을 보며 뱀은 샤먼이 되기도 하고 신이 되기도 하였다.
뱀에 대한 인간의 모순적인 마음은 특정 지역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뱀은 각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반영하며 ‘천 개의 얼굴’을 가진 문화상징으로 인간과 함께 살아왔다.
2025년 을사년 뱀띠 해를 맞아 전 세계 민속문화 속 뱀의 다채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8일부터 내년 3월 3일까지 기획전시실2에서 ‘만사형통(萬巳亨通)’ 특별전을 개최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02년부터 매년 띠 전시를 마련해 십이지 동물과 관련한 국내 민속을 소개해 왔다. 이번 을사년 뱀띠 해 특별전에서는 세계민속으로 범위를 확장해 뱀과 관련된 문화와 상징을 소개한다.
국립민속박물관 ‘만사형통(萬巳亨通)’ 전시장. (사진=국립민속박물관) |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수집한 뱀 관련 세계민속 자료를 최초로 공개한다. 다양한 문화권의 뱀과 관련한 문화적 상징성을 엿볼 수 있다.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아프리카 바가족의 신줏단지, 스리랑카 지역의 뱀이 조각된 가면, 멕시코 아즈텍 문명의 캘린더 스톤 등 각국의 뱀 관련 민속 유물이 관람객과 만난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했다. 1부 ‘총명한 뱀’에서는 십이지신 중 하나인 뱀이 갖는 문화적 의미를 소개한다. 뱀의 모습을 담은 그림, 우표, 공예품에서 지혜를 상징했던 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십이지 개념은 민간에 퍼지며 시간과 방위를 나타내는 일상용품에 활용됐다. 남남동쪽을 가리키며 오전 9~11시를 가리켰던 뱀은 해시계, 나침반, 생활용품에 담겼다.
2부 ‘두려운 뱀’에서는 뱀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뱀을 피하고자 했던 인간의 지혜를 조명한다. 뱀은 어리석은 인간을 경고하거나 벌을 주는 존재였다. ‘시왕도(十王圖)’, ‘게발도(揭鉢圖)’ 같은 그림에서는 뱀에게 심판받는 인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향으로 뱀을 쫓았던 옛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향갑 노리개’, 불을 붙여 뱀을 쫓았던 ‘미심’ 등의 생활용품에서는 뱀을 피하려 한 선조의 지혜가 엿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 ‘만사형통(萬巳亨通)’ 전시품 ‘바가족 세르판’. 아프리카 기니의 바가(Baga)족의 뱀 수호신 조각이다. (사진=국립민속박물관) |
3부 ‘신성한 뱀’에서는 뱀을 신성한 존재로 숭배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땅속과 땅 위를 오가는 뱀의 모습을 보며 인간은 뱀이 이승과 저승의 서로 다른 두 세상을 오가는 신비로운 존재라 생각했다. 샤먼이 의례에 사용했던 숟가락, 북 손잡이, 지팡이 등에는 뱀이 조각돼 있다.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고, 한 번에 여러 개의 알을 낳는 뱀은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상징했다.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에 사용했던 가면, 공예품 등에서 신비로운 뱀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말미에는 운세 체험 키오스크를 운영하여, 을사년 뱀띠 해의 운세를 점칠 수 있다. 체험 후 관람객들은 운세 결과가 담긴 뱀띠 해 부적을 가져갈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뱀띠 해를 맞이해 전시개막일인 18일 오후 1시부터 ‘을사년(乙巳年), 만사(巳)형통’ 학술강연회를 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한다.
국립민속박물관 ‘만사형통(萬巳亨通)’ 전시품 스리랑카의 마하 코라 가면. (사진=국립민속박물관) |
국립민속박물관 ‘만사형통(萬巳亨通)’ 전시품 ‘저승 세계를 관장하는 10대왕’. (사진=국립민속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