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유산 지킴이들] 〈3〉국립해양유산硏 양순석 팀장
31년 근무중 고선박 11척 발굴 참여
“육지서 1년 걸릴 일, 바다에선 5년
탐사중 그물에 손가락 걸리면 아찔… 유물 보존해준 갯벌이 생명 위협도”
수심 2m만 돼도 눈앞 손목시계조차 읽기 힘들었다. 20kg 납 벨트와 전등 2개, 탐침봉 등을 달고 하강 로프를 따라 신중하게 15m 깊이로 내려갔다. 12세기 고려, 개경으로 향하던 선박이 좌초된 곳. 더듬거리는 손에 둥그런 물체들이 줄줄이 만져졌다. 접시, 벼루, 주전자 등 고려청자 2만여 점은 그렇게 900년 잠에서 깨어났다.
2010년 발굴된 ‘마도 2호선’이 대표적이다. 배에서 발견된 목간(木簡·글이 적힌 나무 조각)은 이 배가 전북 고창에서 개경으로 가던 곡물운반선임을 알려줬다. 양 팀장은 “보물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과 함께 발견된 대나무 조각에는 이 매병이 참기름이나 꿀 등을 담던 용도란 기록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바닷속에서 다채로운 유물이 비교적 온전히 수백 년을 버틴 데는 갯벌의 역할이 크다. 양 팀장은 “펄에 묻히면 해양 생물이나 선박, 미생물 등에 덜 노출돼 안전한 편”이라면서도 “갯벌은 타입캡슐인 동시에 잠수사의 눈을 가려 목숨까지 위협하는 장애물”이라고 했다. “발굴하다 손가락에 그물이 걸리면 가슴이 철렁하죠. 까딱하면 ‘물고기’처럼 걸려 목숨을 잃는 거니까요. 특히 조류 특성 등이 파악되지 않은 해저를 탐사해야 할 땐, 평소 덤덤한 성격인데도 두렵습니다.”양 팀장은 꽤 오랫동안 부모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전남 신안에서 나고 목포에서 자랐지만 수영도 잠수도 할 줄 모르는 그를 걱정하실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객선 선장이셨던 아버지가 ‘바닷일 꿈도 꾸지 말라’며 수영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며 “공대를 나와 보존 처리 담당자로 입사했건만, 어느날 ‘수중 투입’ 지시가 떨어지며 인생이 꼬였다”고 웃었다. 개헤엄도 못치던 그는 부랴부랴 잠수를 배워 해저 탐사와 발굴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동료들과 ‘맨땅에 헤딩’ 수준이던 한국 수중고고학을 온몸으로 이끌어 왔다. 물속에선 육상 발굴 10명이 할 일도 20∼30명이 해야 한다. 땅에서 1년 걸릴 작업이 4, 5년씩 걸린다. 숙식 시설을 갖춘 수중 발굴 전용 선박 ‘누리안호’가 2013년 도입되기 전까지 서해안과 남해안 각지를 전전했다. 그는 “예산이 모자라 임시 컨테이너 집을 짓고 생활하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이제는 한국이 동아시아 3국 중 가장 앞선다고 평가받아요. 일본이 수중고고학 역사가 더 오래됐지만, 2010년대부턴 오히려 우리한테 배우러 오고 있어요. 한국은 삼면이 바다고, 갯벌이 풍부하죠. 앞으로 더 많은 보물을 바다에서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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