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택한 고립, 그 벽을 깨는 건 일단 해보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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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장편 ''겨울통'' 펴낸 정용준 작가
언어장애로 세상과 거리둔 주인공
연인의 등장으로 새로운 삶 찾아
''몸이 녹는 바이러스'' 독특한 설정
"불가능을 믿는 숭고한 마음 그려"

  • 등록 2026-06-03 오전 5:00:00

    수정 2026-06-03 오전 5:00:00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처음부터 고립을 자처한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그렇게 된 것이죠.”

정용준 작가(사진=은행나무 출판사).

신작 장편소설 ‘겨울통’을 펴낸 정용준(45) 작가는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함께하기를 원하지만 상처와 오해, 거절을 겪으며 점차 관계를 포기하게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번 소설에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인하를 통해 ‘자발적 고립’이 일상이 된 오늘의 풍경을 그려낸다. 혼자이기를 선택한 인물의 삶에 찾아온 변화를 따라가며,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힘은 무엇인지 묻는다.

정 작가는 2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내일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해야 한다”면서 “새로운 삶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확신, 보장 같은 안전한 계산보다 일단 해보는 무모함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용준 작가(사진=은행나무 출판사).

액체가 된 연인…불가능을 믿는 마음 정 작가는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젊은예술가상 등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의 소설에는 ‘언어의 상실’과 ‘소통의 불가능성’이라는 화두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번 소설의 주인공인 ‘인하’도 소통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정 작가는 소설 속에 말을 잘 못하는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묻자 “저 역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말을 다 전하지 못하는 이들의 내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도 자신의 경험과 무관치 않다. 그는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면 무능하고 어리숙하게 보는 것이 현실”이라며 “때로는 말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어 소설로 쓰게 됐다”고 말했다.

정용준 작가(사진=은행나무 출판사).

‘겨울통’의 이야기는 소도시 소랑에서 시작된다. 소랑도서관의 레지던시 작가로 머물고 있는 인하는 언어장애로 말을 할 수 없다. 대신 패드에 입력한 문장을 디지털 음성으로 변환해 세상과 소통한다. 도서관에 앉아 묵묵히 인하를 지켜보던 동아는 아주 느린 속도로 그에게 다가간다. 매끄러운 디지털 음성 대신 느릿한 필담을 건네며, 인하가 스스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기를 기다린다.

작품에서 가장 강렬한 장치는 제목이기도 한 바이러스 ‘겨울통’이다. 감염되면 몸이 액체처럼 녹아내려 형체를 잃는다. 얼핏 기괴해 보이지만, 정 작가는 이 설정에 변화와 성장의 의미를 담았다. 번데기가 완전히 다른 모습의 나비로 태어나듯, 인간 역시 과거의 자신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 작가는 “번데기가 되면 껍질 안쪽이 모두 액체 상태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며 “주어진 상태를 유지한 채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녹아 다른 몸이 되는데도, 그 육체가 지녔던 기질과 정신, 본질은 유지된다는 점이 시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액체로 변해버린 연인을 되살리기 위해 인하는 먼 길을 떠난다. 동아를 몰드(형태를 만드는 틀)에 담아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작품의 또 다른 축이다. 정 작가는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마음과 시간을 쏟는 일을 어리석다고 여기지 말고, 아름답고 숭고한 일로 바라보고자 했다”면서 “스스로 믿음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마음을 소설 속 인물에게 투영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삶에서도 연인과 가족은 사랑하는 사람의 예고된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하루라도 더 함께할 수 있고, 때로는 기적처럼 절망이 기쁨으로 바뀌기도 한다”며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것은 삶에 있다”고 언급했다.

정 작가는 거창한 영감보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 영화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길을 걷다 문득 떠오른 기억과 감정을 메모장에 옮겨 적는다. 그렇게 모인 조각들은 시간이 지나 하나의 ‘문학적인 생각’으로 엮이고, 마침내 소설이 된다. 그는 “일상의 파편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작가 자신”이라며 “픽션은 꾸며낸 이야기지만, 그 안에 작가의 경험과 진심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작품 속에서 진정성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용준 작가(사진=은행나무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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