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록터앤드갬블(P&G)이 슈퍼마켓 체인 앨버트슨스와 손잡고 매장용 짧은 드라마 콘텐츠를 제작했다. 유통업체의 고객 데이터와 브랜드 콘텐츠를 결합해 소비자를 매장 앱과 계산대로 유도하려는 새로운 광고 실험이다.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앨버트슨스의 미국 내 2244개 매장 일부 방문객은 조만간 타코 가판대를 운영하는 가족을 다룬 코미디드라마를 접하게 된다. P&G는 앨버트슨스의 광고 판매·데이터 부문인 앨버트슨스 미디어 컬렉티브와 협력해 ‘리코스 타코스’를 개발했다. 이 시리즈는 1~2분 분량의 짧은 에피소드로 구성되며, 에피소드 안에 P&G 제품이 등장한다.
이번 시도는 크레스트 치약과 바운티 종이타월 제조사인 P&G가 소비자를 즐겁게 하면서 동시에 광고하려는 오랜 전략의 최신 형태다. 동시에 브랜드 콘텐츠와 리테일 미디어라는 최근 마케팅 흐름이 만난 사례이기도 하다. 리테일 미디어는 유통업체가 자체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브랜드 광고를 판매하는 사업을 뜻한다.
P&G는 소비자들이 뷰티 제품 진열대 앞에서 멈춰 서서 에피소드 전체를 볼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렐라 코피 P&G 북미 사용자 성장 가속 담당 부사장은 매장에서 소비자의 관심을 끌면 이들이 앱으로 이동해 에피소드를 보고 쇼핑을 이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디어가 파편화되면서 마케터가 소비자에게 도달하기 어려워진 만큼 이 모델이 P&G에 특히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앨버트슨스는 매장 입구, 육류·해산물 코너, 야외 주유소 등 전략적 위치에 설치된 디지털 스크린에서 15초짜리 예고편을 내보낼 계획이다. 화면에는 앨버트슨스 앱으로 연결되는 QR코드가 표시된다. 소비자는 앱에서 전체 에피소드를 보고 최신 로열티 프로그램 혜택도 확인할 수 있다.
월마트부터 달러트리까지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리테일 미디어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이들은 자체 쇼핑객에게서 수집한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광고 타깃팅을 돕겠다고 마케터에게 제안하며 추가 매출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앨버트슨스 미디어 컬렉티브의 브라이언 모나한 수석부사장은 지금까지 이들 네트워크의 상품이 표준 디지털 검색광고와 디스플레이 광고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앨버트슨스는 단순히 광고 지면을 파는 데 그치지 않겠다는 구상이다. 모나한 부사장은 브랜드가 소비자를 소파에서 계산대까지 움직이게 하는 콘텐츠를 개발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P&G처럼 소비자와 시장 성장 기회를 잘 이해하는 파트너와 함께라면 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코스 타코스’의 궁극적 목표는 P&G 제품 판매 확대다. P&G가 시리즈 각본과 촬영을 맡기기 위해 고용한 제작사 브릴라미디어는 앨버트슨스 자체 데이터가 설명한 쇼핑객의 일반적 매장 방문 유형 25가지를 바탕으로 에피소드를 구성했다. 소비자가 실제로 매장을 찾는 이유와 구매 흐름을 이야기 구조에 녹인 것이다.
첫 에피소드에서는 가족 타코 가게 운영을 돕는 할머니가 아보카도를 사기 위해 앨버트슨스에 급히 들른다. 그는 매장을 떠나기 전 P&G의 헤드앤숄더스 샴푸도 새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드라마 속 상황이 식료품 구매에서 생활용품 구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된 셈이다.
앨버트슨스 앱 외에도 앨버트슨스와 P&G는 소셜미디어 채널에 시리즈 클립을 배포할 예정이다. 앨버트슨스는 해당 콘텐츠가 방영되는 매장과 그렇지 않은 매장의 판매를 비교해 성과를 측정한다. 또 앱에서 전체 에피소드를 보고 구매까지 이어진 소비자 수를 추적할 계획이다. 모나한 부사장은 이달 프랑스 칸 라이언즈 국제광고제에서 이 시리즈를 상영해 다른 브랜드의 관심도 끌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실험이 리테일 미디어가 텔레비전과 비슷한 마케팅 채널로 진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본다. 리테일 전문 컨설팅업체 미디어, 애즈+커머스의 앤드루 립스먼 창업자는 리테일 미디어가 도달 범위, 양질의 광고 재고, 희소성, 문화적 관련성 등 TV와 비슷한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TV만큼의 집중 시간을 확보하지는 못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들은 슈퍼마켓 방문 중 짧은 후원형 엔터테인먼트에는 의외로 수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장 미디어 회사 그로서리TV의 3월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약국, 계산대, 델리 카운터처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공간에서 짧은 콘텐츠를 받아들이기 쉽다. 립스먼은 사람들이 1~2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콘텐츠를 본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매장 광고가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슈퍼마켓 냉장 진열대 문에 디지털 광고를 비추는 이른바 ‘쿨러 스크린’ 광고는 응답자의 41%가 부정적으로 봤다. 월그린스는 최근 이런 반응을 어렵게 경험한 사례로 언급됐다. 매장 안 콘텐츠도 위치와 형식, 소비자 상황에 따라 수용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유통업체들은 전통적이고 번쩍이는 광고보다 쇼핑객에게 더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크리에이터와 협업하기 시작했다. 리테일 미디어 분석가이자 팟캐스트 진행자인 키리 마스터스는 매장 안 광고와 콘텐츠가 브랜드의 디지털 리테일 미디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열대에서 제품을 파는 마케터들은 이를 매출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어 비중 확대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이마케터에 따르면 올해 미국 리테일 미디어 지출은 72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전체 디지털 광고 구매의 19%에 해당한다. 2028년에는 약 95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고객 데이터와 매장 접점을 활용해 광고 수익을 키울 수 있고, 브랜드 입장에서는 실제 구매 직전의 소비자에게 접근할 수 있다.
P&G는 형식이나 플랫폼보다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서 소비자에게 도달하는지를 중시하고 있다. 코피 부사장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5년 뒤에는 드론 쇼가 광고 채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13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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