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이 표심을 흔든다”…美선거판 달군 ‘MAGA 턱수염’

18 hours ago 3

왼쪽은 공화당 후보 스티브 힐튼, 오른쪽은 공화당 후보 채드 비안코. AP/뉴시스

왼쪽은 공화당 후보 스티브 힐튼, 오른쪽은 공화당 후보 채드 비안코. AP/뉴시스
460만 캘리포니아주 인구의 표심이 ‘수염’에 흔들리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각 후보가 수염 모양과 양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히틀러의 등장 이후 미국 정치계에서 짙은 수염은 금기시되어 왔지만, 최근 들어 거친 남성성과 체제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콧수염이 재발견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7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표심을 가를 변수 중 하나로 후보들의 수염 스타일이 거론되고 있다.

이번 주지사 선거의 유력 후보인 공화당 채드 비안코 후보는 짙은 콧수염을 선보이며 지지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상대인 공화당 스티브 힐튼 후보도 이를 견제하듯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수염 경쟁은 후보 간 신경전으로도 번지는 모양새다. 비안코는 “힐튼은 강해 보여야 하니 (억지로) 외모를 바꾸고 수염을 기른 것”이라며 “자신처럼 수염을 기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힐튼은 비안코의 콧수염이 만화 캐릭터처럼 우스꽝스럽다고 맞받아쳤다. 이어 자신의 수염은 휴가 기간 면도하지 못해 자란 자연스러운 것으로, 오히려 유권자들은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여기에 더해 “유세 행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95%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도 밝혔다.● ‘성공한 정치인’의 상징에서 ‘최악의 전범’으로

워싱턴 D.C.에서 서류를 들추어보고 있는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의 앉아 있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워싱턴 D.C.에서 서류를 들추어보고 있는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의 앉아 있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 정치권에서 수염은 단순한 외모 요소 이상의 의미를 지녀왔다.

펜실베이니아대 역사학 박사인 숀 트레이너의 2015년 논문 ‘권력을 위한 단장(Groomed for Power)’에는 이 같은 사실이 상세히 나와 있다.

19세기 초반까지 미국 사회에서 긴 수염은 일탈·광기·부도덕함의 징표로 여겨졌다. 그러다 1861년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수염을 기른 채 연단에 오르며 상황은 반전됐다. 수염이 ‘인간적인 대통령’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후 1889년 벤저민 해리슨까지 공화당은 ‘수염 대통령’을 연이어 배출했다.

당시 이발소 개업조차 허용되지 않던 흑인들이 면도·이발업을 주도하자, 백인 상류층이 인종적 거부감으로 이발소 방문을 꺼리며 스스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있다.

1932년 봄, 뮌헨에서의 아돌프 히틀러(1889~1945).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932년 봄, 뮌헨에서의 아돌프 히틀러(1889~1945).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수염의 이미지는 다시 달라졌다.

아돌프 히틀러를 비롯해 이오시프 스탈린, 피델 카스트로 등 독재자들이 강한 수염 이미지를 갖게 되면서 정치인들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깔끔하게 면도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1934년 재임 중 사망한 제임스 롤프를 마지막으로 수염을 기른 주지사는 사실상 등장하지 않았다.

1960년 미국 대선 TV 토론에서 리처드 닉슨이 존 F. 케네디에게 밀린 이유 중 하나로, TV 화면에 비친 닉슨의 거뭇한 수염 자국이 거론되기도 한다.

● 대공황 이후 92년 만에 ‘수염 주지사’ 탄생하나

캘리포니아주 주지사에 출마한 후보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민주당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민주당 케이티 포터, 민주당 톰 스테이어, 그리고 공화당 스티브 힐튼. 캘리포니아는 정당과 관계 없이 예비선거를 거쳐 표를 가장 많이 받은 2명이 본선에 진출하는 ‘탑 투(Top-Two)’ 제도를 택하고 있다. AP/뉴시스

캘리포니아주 주지사에 출마한 후보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민주당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민주당 케이티 포터, 민주당 톰 스테이어, 그리고 공화당 스티브 힐튼. 캘리포니아는 정당과 관계 없이 예비선거를 거쳐 표를 가장 많이 받은 2명이 본선에 진출하는 ‘탑 투(Top-Two)’ 제도를 택하고 있다. AP/뉴시스
최근 들어서는 또 다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반의 스타트업 문화가 확산하며 복장과 외모 규범이 느슨해졌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이다. 이에 따라 수염이 자유분방함과 반체제 이미지를 상징하는 요소로 재해석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도 힐튼의 덥수룩한 수염을 두고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턱수염’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예비선거는 6월 2일 실시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힐튼 후보가 면도한 얼굴의 민주당 후보 하비에르 베세라 후보와 선두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캘리포니아에서는 대공황 시기 이후 약 92년 만에 ‘수염 주지사’가 탄생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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