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정해진 나이보다 앞당겨 받는 조기 노령연금 수급자가 지난 8월 기준 100만5912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국민연금을 애초 받을 나이보다 먼저 받으면 수령액이 깎이지만, 그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일단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을 일찍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달 공개된 국민연금공단의 ‘2025년 8월 국민연금 공표통계’에 따르면 전체 조기 수급자 중 남성이 66만3509명, 여성이 34만2403명으로 남성이 두 배 가량 많았습니다.
연령별로는 60~65세 미만이 38만2449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중 남성이 23만3273명이었습니다. 가계의 주 소득원이었던 남성의 가장들이 은퇴 후 소득 단절을 메우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조기 연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음을 시사합니다.
조기 노령연금 수급 제도란 정해진 법정 지급시기보다 1~5년 앞당겨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말합니다. 하지만 1년 일찍 받을 때마다 연금액은 연 6%(월 0.5%)씩 깎이게 됩니다. 5년을 앞당겨 받으면 원래 받을 연금의 70%밖에 받지 못합니다. 예컨대 월 100만원 수급자격이 있는 경우 5년 전부터 받으면 70만원만을 수령하게 되는 셈입니다.
연금 조기 수급자가 증가한 데에는 2013년부터 5년마다 한살씩 올라가는 연금개시연령 영향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가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만 60세가 연금 수급이 시작되는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1998년 1차 연금개혁을 통해 지급개시연령은 단계적으로 올라갔습니다. 2013년 61세를 시작으로 5년마다 1세씩 올려 2033년 65세까지 높이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1952년 이전 출생자는 만 60세부터 국민연금을 받고 있지만 1953~1956년생은 만 61세부터, 1957~1960년생은 만 62세부터 연금을 받게 됩니다. 1960년생도 이 개혁이 없었다면 3년 전인 2020년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었겠죠.
1961~1964년생은 만 63세, 1965~1968년생은 만 64세, 1969년생 이후부터는 만 65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급개시연령은 높아지고 있으니ㅡ 당장 현금 흐름이 절박한 은퇴자들이 국민연금을 일찍 받고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특히 기점에 걸려있는 1965년, 1969년 출생자들은 1년 전 출생자들에 비해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이 2년 늦어집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은퇴 후 부부의 월 평균 적정 생활비는 336만원 가량으로 집계됐습니다. 부부 기준으로 연 4000만원 정도의 목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연금 지급개시연령 1년의 차이는 상당한 부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급개시연령을 높이는 것은 국민연금 재정 관점에선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1970년 62.3세에서 지난해 83.7세로 늘면서 수급자들이 연금을 받는 기간 자체도 늘어났기 때문에 연금 수급 개시 연령도 늦춰지는 것이 타당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실제로 2023년 정부가 연금개혁안 도출을 위해 운영한 전문가 자문기구인 재정계산위원회는 지급개시연령을 최대 68세까지 높일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재정계산위는 5년마다 1년씩 지급개시연령이 높아지는 현재의 추세를 그대로 이어가 2038년 66세, 2043년 67세, 2048년 68세로 지급 개시 연령을 늦추는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다만 지금의 법정 정년(60세)과 연금 수급개시연령 간의 불일치는 ‘연금 공백’이라는 문제를 초래합니다. 연금 수급연령을 무작정 높이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2021년 연금 수급 연령을 만 67세로 상향조정하려다 반발에 막혀 2024년 이후로 연기했습니다.
프랑스는 2020년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연금개혁을 추진했으나, 거센 반발에 2022년 대선 이후로 미뤘습니다. 2023년 1월 연금개혁안을 발표했을 땐 전국적인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 등 상당한 진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은퇴 후 재취업 시장 활성화 등 ‘소득 크레바스’를 메울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한국도 연금 연령을 높일 경우 조기연금을 활성화하는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감액비율을 일부 완화하는 방향으로 조기노령연금 수급을 유도하면 고령화시대에 연금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용이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정부가 최근 노인 일자리를 대폭 늘리고 있는데, 이 역시 고령층의 연금 공백에 따른 소득 감소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입니다.
수급개시연령 상향은 이미 예고된 것이니 만큼, 국민연금 공백은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60대가 넘어서도 안정적인 소득이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연금 공백기를 버틸 목돈이나 배당 등 소득원을 마련하거나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을 통해 대비를 해야겠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4 days ago
8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