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위 의장이 정책적인 원칙을 견지하는 게 매우 좋았다. 정무적 판단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달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해 2기 지도부 인선 발표를 앞두고 진성준 정책위원회 의장에게 이 같이 말했다고 한다. 진 의장은 “아침에 이 대표가 부르길래 그만두라고 하려나 보다 하고 갔는데 유임시키더라”고 회상했다.
진 의장은 민주당 내에서도 강경파로 꼽힌다. 이 후보와도 종종 마찰을 빚었다. 특히 작년 8월 전당대회 때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보이던 이 후보와 달리 마지막까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고집한 게 진 의장이다. 이 후보 입장에선 진 의장의 ‘소신’이 눈엣가시로 여겨질 수 있지만, 한편으론 대외적으로 레드팀 역할을 하는 진 의장이 전략적으로 기용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진 의장은 전북 전주 풍남초, 신흥초, 동암고에 이어 전북대 법대까지 고향인 전주에서 성장 과정을 거쳤다. 전북대 법과대학 학생회장으로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했고 이듬해 전북대 부총학생회장이 됐다. 학생운동 전적은 청년 시절 내내 그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1989년 입대 후 인권 문제와 관련해 동료들과 해결 방안을 논의하다가 불순 조직으로 몰렸다. 이 때문에 육군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진 의장은 한 인터뷰에서 “저 때문에 집이 압수수색을 당했고, 이후 어머니 앞에서 보안사에 체포돼 끌려 나간 적이 있다”며 “당시 어머니가 제 손을 놓지 못하시던 모습이 제 가슴 속에 평생 박혀 있다”고 전했다. 진 의장은 제대 후에도 학생운동을 이어갔다. 1991년 2월 12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고, 1991년 8월 22일 공익건조물방화 및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징역 4년 6개월을 살았다.
진 의장이 정계에 입문한 건 1995년이다. 장영달 전 국회의원을 6년간 보좌했고, 2000년대 후반부터 당직자로 일하며 정세균·손학규 민주당 대표 체제에서 전략기획국장을, 한명숙·문재인 대표 시절에는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았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2012년)에서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서울 강서 지역위원장 선거에서 한정애 의원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당선돼 지역에서 기반을 닦았지만,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에 밀려 낙선했다.
야인 생활이 길진 않았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선 캠프에 합류했다. 문재인 당 대표 시절 전략기획위원장으로 만나 인연을 맺었다. 안철수 전 의원 등 당내 비주류 인사들의 공세에 처할 때마다 '비타협적 강경노선'을 주도했다. 2017년 대선 역시 문재인 후보의 전략본부 부본부장, TV 토론단장으로서 당선에 기여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기획비서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함께했던 동료는 한병도 의원(전북 익산·3선), 박수현 의원(충남 공주·재선) 등이다. 진 의장은 1년 뒤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무부시장으로 국회, 시의회, 언론 간 가교 역할을 했다. 체급을 키운 진 의장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수 공천됐고 지역구 의원으로 국회에 복귀했다.
친문(문재인계) 성향이 강한 진 의장이 이 후보 체제에서 기용된 건 정무와 정책 모든 면에서 실력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란 평가다. 이 후보가 진 의장을 등용시킨 건 작년 4월이다. 능력적으로 이 후보의 신임을 얻고 있다는 후문이다.
진 의장은 "이념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며 거침없이 우클릭하는 이 후보의 대척점에 서서 민주당의 전통적인 가치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대표적으로 작년 8월 전당대회 경선 과정에서 이 후보가 금투세 도입 유예와 종합부동산세 재검토를 시사하자 진 의장은 금투세 시행을 주장하며 각을 세웠다. 이 후보의 지지자들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기도 했지만 소신을 지켰다. 진 의장은 "이기지도 못하는데 왜 계속 (금투세 폐지) 주장하는 거냐"는 아들의 말에 "국회의원이 소신을 굽힐 거면 배지 뭐하러 다냐"고 말했다고 한다.
가상자산 과세 폐지,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예외 적용, 연금 개혁 시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여러 의제에서도 이 후보와 맞붙었다. 상황은 대체로 이 후보의 의중대로 흘러갔다. 친명 의원들 입장에선 거의 모든 사안마다 이 후보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진 의장이 눈엣가시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진 의장이 당에서 꼭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진 의장의 '뚝심'이 이 후보의 우클릭 행보로 인해 당이 지는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진 의장은 이번 대선 선거대책위원회의 '정책 사령탑'으로 정책본부를 이끌고 있다.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이한주 원장, 그리고 김성환 의원(서울 노원·3선)과 공동 본부장직을 맡았다. 이 후보의 ‘무한경쟁’ 인선 기조를 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 갈래로 나뉜 정책 발굴 루트를 통해 이 후보는 가장 확실하고 만족스러운 정책을 채택해 향후 국정 운영에 도입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클래식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관용차 라디오 주파수가 늘 KBS 클래식FM 채널인 '93.1'에 고정돼 있다고 한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1967년 전북 전주 △동암고-전북대 법학과 △청와대 정무비서관(문재인 정부)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서울시 정무부시장 △19·21·22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제21대 대선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장
대통령은 한 명이지만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은 수백, 수천명입니다. 대통령 후보 곁을 밀착 보좌하고 유권자 표심 공략 전략을 짜는 참모부터 각 분야 정책을 발굴해 공약으로 가다듬는 전문가까지,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한국경제신문은 ‘6·3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대선 후보를 돕는 인사들을 소개하는 온라인 시리즈 기사를 연재합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