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박한 보통 사람으로 살기를 바랐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직접 택한 묘지 역시 남달랐다. 웅장한 성 베드로 대성당 대신 바티칸 밖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아무런 장식이나 비문 없이 교황명인 ‘프란치스코’만 새겨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홈페이지
바티칸이 21일(현지 시간) 공개한 유언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묘지를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지하에 마련해달라고 했다. 교황은 유언에서 “내 일생동안, 그리고 사제와 주교로서의 사목 활동 중 나는 언제나 우리 주님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나 자신을 맡겨 왔다”며 “내 마지막 지상 여정이 내가 모든 사도적 순방의 시작과 끝에 항상 들러 기도하며, 그분의 온유하고 자애로운 보살핌에 감사 드렸던 이 고대의 마리아 성지에서 마무리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홈페이지
교황은 대성당 내 파올리나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 측랑 묘소에 안장되기를 원한다며 위치까지 지정했다. 묘지에는 어떤 장식도 없이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만 새기기를 바란다고 명시했다. 교황은 “묘소 준비 비용은 직접 마련했다”며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전달되도록 조치해뒀다고도 밝혔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은 로마의 4대 대성당 중 하나로, 5세기경 지어졌다.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유일한 고대 기독교 성당이다. 로마 내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성모 마리아가 귀족 조반니와 교황 리베리오의 꿈에 나타나“눈 내리는 에스퀼리노 언덕에 성당을 지으면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고, 한여름인 8월 5일 정말 에스퀼리노 언덕에 눈이 쌓여있어 이곳에 성당을 짓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눈이 내린 8월 5일을 기념해 매년 이날 미사를 열고 하얀 장미 꽃잎을 눈처럼 흩뿌리는 의식을 진행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약 100명의 역대 교황이 묻힌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이곳을 묘지로 정한 것은 의외이면서도, 교황답다는 평가다. 교황이 바티칸 외부의 성당에 묻히는 것은 약 120여 년 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이 성당을 좋아해 취임 후 100회 이상 찾은 것으로 전해진다. 2013년 취임식 다음날 첫 외부 방문지로 이 성당을 택해 비공개 기도를 드렸고, 해외 순방을 전후에 로마로 돌아오면 항상 이 성당을 찾았다. 또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한 뒤 바티칸으로 돌아올 때마다 성당을 찾아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따르면 이곳에는 성 비오 5세 등 7명의 역대 교황이 안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