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도 없는 '정년 65세' 연장… 법원만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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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도 없는 '정년 65세' 연장… 법원만 바빠진다

법정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가파른 고령화, 현행 정년 60세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사이의 소득공백을 고려하면, 계속고용 제도의 설계를 미룰 수는 없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정년연장 입법을 추진 중이고, 정년을 단계적으로 늘릴 때마다 재고용 대상 연령도 1세씩 늘려 정년보다 한 살 높은 연령까지 계속 고용하도록 하는 ‘퇴직 후 재고용 의무화’도 병행한다는 입장이다.

노동법을 다루는 변호사로서 이런 류의 입법 논의를 마주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정년연장 논의는 '몇 살까지 일하게 할 것인가'에만 무게중심이 쏠려 있고, 임금체계 개편(임금피크제, 직무급 전환)이나 청년 채용 방안은 각주 취급에 그치는 것 같다. 임금체계 개편 등이 동시에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면, 정년연장은 기업 입장에서 고정비 증가로만 읽혀 결국 신규채용 축소와 비정규직 활용 확대라는 익숙한 길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 정년연장과 청년고용은 별개 문제이고 두 정책을 병행하면 된다고 하지만, 현실은 이론처럼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특히 대기업·공공기관과 같이 세대와 무관하게 선망되고 정년연장의 실효성이 큰 곳일수록 신규채용 규모가 경직적으로 정해져 있어, 정년연장 시 청년 채용의 문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고용 대책이 보조금성 정책에 머무른다면 K자형 고용 양극화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재고용의무 역시 면밀한 검토와 설계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재고용의무란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촉탁직, 계약직 등의 형태로 계속 고용하도록 사업주에게 의무를 지우는 것이다. 현행 고령자고용법 제21조는 정년퇴직자 재고용에 대한 ‘노력의무'만 규정하고 있는데, 이제 법적 의무로 변경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재고용의무가 기존의 기간제 근로 법리와 어떻게 맞물릴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논의가 잘 보이지 않는다. 기간제법은 고령자(만 55세 이상인 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2년을 초과하여 계약직(기간제)으로 사용해도 무기계약으로 전환되지 않는다고 정한다(제4조 제1항 제4호). 향후 재고용의무가 입법되더라도 촉탁직 형태의 반복적인 계약 체결과 무기계약 전환을 예외로 하는 구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확립한 기간제 근로자의 갱신기대권 법리는 어떻게 맞물리게 될까. 갱신기대권은 계약기간이 끝나더라도 근로자가 ‘계약이 갱신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를 가지는 경우, 사용자의 갱신 거절이 부당해고처럼 무효가 될 수 있다는 법리다. 즉 정년퇴직자를 2년을 초과해 촉탁직으로 사용할 수 있더라도, 갱신기대권 법리는 별개로 작용하므로 재고용이 법적 의무가 되는 순간 촉탁직 근로자 입장에서는 갱신에 대한 기대가 더 단단해질 수 있고, 사업주가 촉탁직 계약을 끝낼 재량은 지금보다 더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고령자고용법은 정년퇴직자 재고용 시, '당사자 간 합의'로 퇴직금 및 연차유급휴가일수 계산을 위한 계속근로기간에서 종전 근로기간을 제외할 수 있고, 임금의 결정을 종전과 달리하는 것을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제21조 제2항). 그런데 재고용계약의 법적 성격, 즉 이것이 기존과 단절된 새로운 근로관계인지 아니면 기존 근로관계의 연속인지, 재고용 대상자는 어떤 기준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 선정할 것인지, 재고용 시 합리적 임금 수준 결정 기준은 무엇이고, 그 임금 수준을 근로자의 직무가치, 성과, 생산성, 의무 책임 등을 기준으로 조정할 수 있는지, 재고용을 거부할 수 있는 합리적 사유는 무엇인지, 재고용을 거부하거나 임금을 삭감하는 경우 법적 구제 절차는 어떤지 등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는 비어 있다. 이러한 쟁점에 관한 철저한 설계 없이 법이 통과된다면, 재고용 거부 내지 근로계약 갱신 거절의 정당성, 임금 조정의 정당성 등은 결국 개별 소송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정리될 것이다. 설계도 없이 주먹구구 식으로 지은 집은 살면서 큰 하자가 발견되기 마련인데, 그 하자보수 청구서가 법원으로 갈 공산이 크다.

싱가폴이나 일본과 같이, 정년연장이나 계속고용 제도가 비교적 순조롭게 자리 잡은 곳은 예외 없이 임금체계 개편, 재고용계약의 법적 성격, 청년 채용 연계 방안을 비슷한 시기에 함께 법제화하거나 노사정 합의로 정리해둔 경우였다. 이번 정년연장 입법 시에는 단순히 정년 숫자만 늘린 채 나머지 법과 제도의 조율을 판례에만 맡겨두지 않기를 바란다.

윤혜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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