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
지난 2월 말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향해 수차례 엄포를 놓았다. 이란의 핵무기 포기와 역내 안정을 목표로 시작된 전쟁은 미국의 ‘맹폭’으로 전개되던 개전 초기와는 다르게 지리멸렬해지고 있다. 양국 간 종전협상은 장기화되고 있으며, 미국은 공격 재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중이다.
대이란 협박용 수사인 ‘석기시대’란 단어엔 기시감이 든다. 1965년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공군 참모총장 커티스 르메이의 발언 때문이다. 공산국가인 북베트남을 석기시대로 만들겠다는 그의 호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평화협정은 지지부진했으며, 전쟁은 10년간 지속됐다.
미국·이란 전쟁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51년 전 미국의 완패로 끝난 전쟁을 다각도로 분석한 ‘베트남 전쟁’이 최근 번역 출간됐다. 영미권 군사사학계의 대표적인 역사학자인 제프리 와우로가 군사·외교 문서 등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참고문헌과 각주로 ‘초강대국’ 미국의 오만과 자기기만을 파헤친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저자에 따르면 1965년 베트남에 대규모로 미군을 파병한 린든 존슨 미국 행정부에게 승리를 위한 전략은 존재하지 않았다. 공산주의 확산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에 그는 가난한 국가 북베트남을 향해 “형편없고 하찮은 4류 국가”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실제 미군의 군사행동은 기이할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공산주의 저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한국 전쟁 당시 해리 트루먼 행정부를 수렁에 빠뜨렸던 중국과 소련의 개입은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안된 전략은 ‘점진적 압박’이었다. 북베트남을 전면 공습하지 않고, 그들과 남베트남 공산 게릴라 조직 ‘베트콩’을 잇는 주요 보급로인 중국 국경지대와 라오스·캄보디아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병력과 물자를 늘렸다. 북베트남의 전면 파괴를 노리지 않는 전략으로 중국과 소련을 안심시키는 한편 북베트남엔 국력을 과시해 굴복시키겠다는 노림수였다.
미국의 자기중심적인 판단은 오판이었다. 중국과 소련은 전쟁에 임하는 미국의 태도가 진지하지 않다고 여겼다. 남베트남 내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는 베트콩들은 북베트남의 지원으로 세를 불렸다. 미군은 적국이 아닌 동맹국 ‘남베트남’에서 베트콩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자국 군인의 막대한 희생뿐 아니라 남베트남 민간인들의 피해도 커졌다. 동맹국 영토에서 벌인 이상한 ‘제한전’의 유일한 이유는 분명했다. 약해 보이면 안 되지만, 확전 또한 허락할 수 없는 지도자의 아집과 자기기만이었다.
“존슨은 대규모 전쟁으로 대중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공산주의를 억제하는 절묘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물을 비판자들은 ‘승산 없는 전쟁’이라고 불렀다.”
다음 정부인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꼬일 대로 꼬인 전쟁 양상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당시 닉슨 행정부는 1968년 전임 린든 존슨 행정부가 거의 매듭지어놓은 평화협상을 무위로 돌려놨다. 중국·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북베트남을 고립시키고, 더 공세적으로 나가 유리한 협상 조건을 마련한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닉슨 행정부는 전쟁에 부정적인 의회와 여론에 막혔다. 수만 명에 달하는 미군 전사자로 인해 반전 운동이 들끓었고, 막대한 전비 지출로 인한 물가 상승은 극심했다. 전비 증액은 힘들어지고, 미군의 사기는 갈수록 더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마땅한 출구전략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1973년 닉슨 행정부는 파리에서 전임 정부가 맺으려 했던 내용과 유사한 내용의 평화협정을 북베트남과 떠밀리듯 체결한다. 최종 결과는 주지하듯 베트남의 공산화였고, 미국의 완벽한 패배였다.
저자는 말한다. “닉슨의 전쟁은 1968년에 그의 방해 공작이 없었다면 존슨이 끝냈을 법한 전쟁 못지않게 무익했다.”
책은 베트남 전쟁 당시 의사 결정이 이뤄지던 백악관과 펜타곤의 책상과, 네이팜탄이 내뿜는 화염과 병사들의 비명으로 가득 찬 전장을 교차해 보여주며 오만하고 자기기만적인 미국의 민낯을 고발한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51년 전과 같이 ‘석기시대’를 운운한 트럼프 행정부의 무모한 전쟁이 겹쳐 보인다. 여론을 의식해 지상군 투입을 주저하면서도, 이란 국민들의 ‘민중 봉기’ 가능성을 믿고 뚜렷한 전략 없이 전쟁을 일으킨 수뇌부들은 지금과 같은 난맥상을 예상했을까. 무모한 전쟁으로 평가되는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베트남 전쟁과 엮어내는 저자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미국·이란 전쟁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듯하다.
“(베트남 전쟁의) 교훈을 미국인이 배웠던가? 거의 배우지 않았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오랫동안 벌인 무익한 ‘9·11’ 전쟁들은 베트남 전쟁 못지않게 소모적이었지만, 베트남의 엄중한 교훈은 한참 전부터 억눌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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