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닛케이 CEO 설문조사
양국 협력때 성장성 큰 산업
韓 인공지능,日 반도체 꼽아
상대국 투자 걸림돌 물어보니
"정치·외교 불확실성 1순위"
CJ제일제당은 오는 9월 완공을 목표로 도쿄 인근 지바현 기사라즈에 축구장 6개 크기 넓이의 만두 공장을 짓고 있다. K팝과 K콘텐츠를 통해 이미 일본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CJ그룹이 K푸드를 앞세워 글로벌 영토 확장에 나선 것이다.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도 활발하다. 최근 10년간 일본 기업의 국내 산업단지에 대한 투자는 131억6130만달러(약 18조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투자 금액인 286억4670만달러(약 39조원)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중소 제조업이 강한 일본 산업 특성상 입주 환경이 좋은 한국 산업단지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분석이다.
19일 매일경제신문이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공동으로 실시한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업인 인식조사에서도 양국에 대한 투자 수요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상대국의 비즈니스 환경에 관한 질문에 한국 최고경영자(CEO)의 41.6%가 '매력적'이라고 응답해 '매력적이지 않다'의 16%를 크게 웃돌았다. 일본 CEO들도 30.1%가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을 '매력적'으로 봤다.
이에 따라 한국 CEO의 29.2%가 향후 3년 내 일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46.1%는 일본 기업과의 제휴도 늘리겠다고 응답했다. 보수적인 일본 기업 CEO의 경우 현재 상황을 유지하거나 투자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응답 비중이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높았지만, 투자를 줄이거나 한국 기업과 제휴를 줄이겠다는 응답은 단 한 건도 없었다.
투자와 관련해 한국 CEO의 56.6%는 일본에서 통할 만한 산업 1순위로 콘텐츠·캐릭터 산업을 꼽았다. 콘텐츠에는 드라마와 음악, 게임, 만화 등이 포함됐다. 2위로는 24.8%가 반도체·첨단소재 부문을, 3위는 23.9%가 식품·화장품·주방용품·문구류 등 소비재 산업을 거론했다. CJ의 일본 만두 공장이 여기에 해당하는 셈이다.
같은 질문에서 일본 CEO는 48.5%가 반도체·첨단소재 부문을 꼽았다. 반도체 소부장에 강점이 있는 일본으로서는 반도체 제조 경쟁력이 우수한 한국이 매력적인 시장으로 거론된다.
이와 함께 36.8%의 CEO는 콘텐츠를 2순위로 거론했다. 한국 젊은 층 사이에서 J팝 음악이 인기이고,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폭넓게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를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향후 10년 내 양국이 협력할 경우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산업'에 대해서는 한일 CEO의 시각차가 드러났다.
한국 CEO는 1순위로 41.6%가 인공지능(AI)을 꼽았지만, 일본 CEO는 58.8%가 반도체를 거론한 것이다. 여기에 헬스케어·바이오 산업과 친환경 에너지 산업 등도 높은 순위에 올랐다. 최근 한국을 찾은 나가시마 아키히사 일본 총리 보좌관은 "경제안보는 각국이 전략적 자율성과 전략적 불가결성을 추구해야 하므로 '경쟁과 협력'을 병행해야 한다"며 "AI와 로보틱스, 바이오, 양자컴퓨팅 등 민간과 군사 용도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이중 용도의 최첨단 기술 분야에 대해 양국의 연구개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 간 협력이나 상대국에 대한 투자를 위해 아쉬운 부분으로 양국 CEO 모두 '한일 관계를 둘러싼 정치·외교적 불확실성'을 1순위로 꼽았다. 한국 CEO의 응답 비중도 39.8%로 높았지만, 일본의 경우 54.4%로 과반을 껑충 넘었다.
일본 기업 상당수가 문재인 정부 때의 '노노재팬' 등과 같은 반일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이 때문에 한일 관계가 개선된 지 3년이 지났지만 한국과의 비즈니스에 대해 신중한 행보를 취하는 곳들이 여전히 많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양국 기업인은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 정책을 요구했다. 두 곳 모두 기업 교류 활성화를 위한 정부 정책 1순위로 '양국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꼽았다. 이어 인허가 절차 간소화와 차세대 기업인 교류 등이 고르게 거론됐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글로벌 교역환경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올해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양국 경제 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도쿄 이승훈 특파원 / 서울 이재철 기자 / 신윤재 기자 / 최현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