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기술 홀랑 넘겼는데 '징역 6년'…"이러니 빼돌리지" 분통 [강경주의 테크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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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DS(반도체부품)부문 직원들이 경기 화성 반도체공장 클린룸에서 반도체 생산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DS(반도체부품)부문 직원들이 경기 화성 반도체공장 클린룸에서 반도체 생산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대만 사법 당국이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TSMC의 2나노미터(㎚·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정 기술 유출 사건 관련자들에게 최대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번 사건은 반도체 기술 유출에 대해 대만이 국가안전법 경제간첩죄를 적용한 첫 판결이다. 반면 한국은 중국 등 외국에 핵심 공정을 넘긴 사건에도 처벌 수위가 낮고 집행유예가 반복되고 있다.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약한 처벌 체계가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만 법원, TSMC 기술 유출 방지 앞장

6일 업계에 따르면 대만 지식재산·상업법원은 국가보안법상 '국가핵심 주요기술 영업비밀의 역외 사용' 혐의 등으로 기소된 TSMC 전 직원 천리밍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앞서 대만 검찰은 천리밍이 TSMC 퇴직 후 일본 반도체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으로 이직한 후 TSMC 엔지니어들로부터 2나노 공정 도면과 자료를 넘겨받았다며 징역 14년을 구형했다. 천리밍과 함께 기소된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유죄가 인정됐다. 현직 TSMC 엔지니어 우핑쥔과 거이핑은 각각 징역 3년과 2년을 선고받았다.

대만 검찰에 따르면 천리밍은 과거 TSMC 팹12 수율 부서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뒤 도쿄일렉트론으로 옮겼다. 이후 2023년 하반기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도쿄일렉트론이 TSMC의 차세대 공정 장비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현직 엔지니어들에게 접근했다. 그는 우핑쥔과 거이핑 등에게 핵심 기술과 영업비밀 제공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해당 자료는 휴대전화 촬영 및 복제 방식으로 외부로 유출됐다. 검찰은 이 정보가 식각 장비 성능 개선에 활용돼 TSMC의 2나노 라인 납품 자격 확보에 쓰이려 했다고 보고 있다.

TSMC는 이상 징후를 포착한 뒤 자체 조사를 진행해 전·현직 직원들이 핵심 기술을 불법 취득한 정황을 확인하고 지난해 7월 대만 당국에 고발했다. 이후 수사당국은 같은 달 압수수색과 조사를 벌여 관련자들을 구속했고, 같은해 8월에 국가보안법과 영업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대만 법원은 도쿄일렉트론 대만 지사에 1억5000만대만달러(약 70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TSMC에 1억대만달러(약 46억8000만원)를 배상하도록 하는 등 법인에도 책임을 물었다. 대만이 2022년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반도체를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한 이후 법인이 핵심 기술 유출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첫 사례다.

2022년 대만은 국가안전법 개정안에 '국가핵심관건기술 경제간첩죄'를 신설하며 첨단산업 보호를 강화했다. 중국 등 다른 나라에 국가핵심관건기술을 유출할 경우 최장 12년의 징역형에 처하고 최대 1억대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국가안전법과 양안관계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에는 국가핵심기술 유출에 대한 '경제 간첩죄'와 '영업비밀 국외유출죄'가 추가됐다. 개정안은 국가의 핵심 기술을 빼돌리는 일명 경제 스파이에 대한 범죄 구속력을 강화하고, 해외에 근무하는 국가 핵심 기술 업무자들 중 규정 위반자에 대한 처벌 수준을 높이는데 집중했다.

대만 행정원은 "최근 몇 년 간 대만 신기술 유출을 노린 검은 손의 접근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의도적으로 대만의 첨단 기술 인재를 영입하고 이를 통해 대만의 핵심 기술을 훔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악용해 역으로 대만 경제에 불법 침투하거나 대규모 자본으로 대만 경제를 흔들려는 사건이 다수 목격됐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천리밍에게 중형이 선고된 배경에 대해 "반도체 기술 보호를 강화하려는 대만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TSMC 로고 / 사진=AFP 연합

TSMC 로고 / 사진=AFP 연합

한국은 핵심 공정 넘겼는데…처벌 6년 4개월 그쳐

대만이 기술 유출에 철퇴로 엄벌하는데 한국은 여전히 솜방망이다. 지난 23일 서울고법은 18나노 D램 공정 정보를 중국 D램업체 창신메모리(CXMT)에 무단으로 넘긴 삼성전자 전 부장 김씨의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6년4개월과 벌금 2억원을 선고하는데 그쳤다. 재판부는 김씨에 대해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을 부정하게 취득해 중국 업체에 넘긴 피고인의 행위는 D램 반도체 개발에 투입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헛되게 하고 시장 거래 질서를 심각하게 저해해 국가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국가 핵심기술인 삼성전자의 18나노 D램 반도체 공정 정보를 무단 유출해 CXMT에 넘긴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김씨가 CXMT로 이직하면서 반도체 증착 관련 자료와 7개 핵심 공정 관련 기술 자료를 유출하고 수백억원대 금품을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사안의 중대성은 한국의 기술 유출이 대만보다 크다. 도쿄일렉트론은 TSMC의 공급업체지만 CXMT는 D램 업체로 삼성전자와 직접적인 경쟁관계다. 도쿄일렉트론은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검찰 수사와 TSMC 내부 조사에 적극 협조했지만 CXMT는 기술 유출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CXMT를 비롯해 중국 파운드리 업체인 SMIC 등은 한국 반도체 인재와 반도체 기술을 지속적으로 노리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기술 유출 범죄 검거 건수는 179건으로 전년보다 45% 급증했다. 반도체가 41건으로 가장 많았고 해외 유출 사건도 105건에 달했다. 지난해의 경우 이틀에 한 번꼴로 기술유출이 일어난 셈이다. 이중 대부분이 중국으로 기술이 유출됐다.

하지만 국내 산업기술 유출 사범 두 명 중 한 명꼴로 집행유예가 선고된다. 금전적 피해도 막대하다. 기술 유출 범죄 피해액은 최근 5년간 23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월 말 국회는 형법 제98조를 개정해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북한)에서 '외국 및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했지만, 산업 스파이에도 간첩죄를 적용해 기술 유출을 엄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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