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의 탈북 맏며느리… “산청이 왜 천국인지 아십니까”[북에서 온 이웃]

1 week ago 25

곡절많은 삶의 끝에 경남 산청에 정착해 딸기 재배를 하고 있는 김명실 씨. 지난해 봄과 여름, 경남 산청은 기록적인 재난을 두 번이나 겪었다. 3월에 발생한 산불은 축구장 4700개 규모의 면적을 태우고 9일 만에 진화됐다. 4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을 입었다.화마가 지나간 지 넉 달 뒤, 이번엔 평생 본 적이 없는 수마가 산청을 삼켰다. 단 3일 동안 600㎜가 넘는 비가 쏟아졌고, 닷새로 범위를 넓히면 강우량이 800㎜가 넘었다. 산청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짧은 시간 내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것이다.폭우로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평화롭던 마을들을 덮쳤다. 사망·실종자만 15명이 나왔다. 논과 밭, 비닐하우스도 완전히 파괴돼 많은 농민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산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비가 그친 다음 날, 무릎까지 차오른 감탕 속에 뛰어들어 열심히 삽질하는 여인이 있었다. 연면적 3000평이 넘는, 20여 동의 비닐하우스는 흙탕물에 흔적만 남았다. 각종 설비는 침수돼 고장이 났고, 관수 호수는 꼬여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하우스에 가득 찼던 딸기 모종들, 포트당 수천 원씩 주고 사 왔던 그 많은 재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올해 농사를 다 망쳤다”고 절망해 며칠 드러누워 있을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재난에 굴할 사람이 아니었다. 올해는 망했지만, 그에겐 내년이 있었다. 50여 년의 인생을 살면서 이런 고난은 수없이 넘어왔다. 넘으면, 아니, 어떻게든 넘어야 낙이 온다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체득한 사람이었다.“저라고 왜 눈앞이 깜깜하지 않았겠습니까. 피해 현장을 보는 순간 통곡이 났지요. 가을에 아들 장가보내려고 했는데, 수해 때문에 2년이나 늦춰졌습니다. 홍수 뒤 폭염 속에서 하루 종일 삽질하다가 허리를 다쳤는데, 지금까지 1년째 치료를 받습니다.”담담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불굴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에게 산청은 단순한 삶의 터전이 아니었다. 북한과 중국에서 수십 년 동안 피눈물을 쏟으며 살던 끝에 마침내 찾은 천국이었다.이런 외진 곳에도 탈북민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산청의 어느 골짜기에서 김명실 씨는 억척스럽게 살고 있다. 딸기 뿌리와 함께, 그의 삶의 뿌리도 점점 깊어지고 단단해지고 있다. 딸기 농사를 시작하던 초기의 김 씨 모습. 중국에서 워낙 많은 농사 일을 했어도, 딸기 농사는 생소했다. ● 결혼 못 하는 처녀들1973년 김 씨가 태어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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