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각종 차별 이슈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왔으나, 미국에서 진행 중인 클럽월드컵에서는 전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어 의문을 남기고 있다.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온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정책에 발맞춘다는 지적이다. 사진출처|FIFA 홈페이지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2025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는 존재하지 않는 2가지가 있다. 축구팬들과 인종차별에 대한 금지 메시지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FIFA는 자신들이 주관하는 주요 국제대회에서 ‘no racism’, ‘anti-discrimination’ 등의 메시지를 내건 캠페인을 시행해왔다. 2022카타르월드컵에선 경기장 대형 스크린과 LED 광고판, 소셜미디어(SNS)를 비롯한 각종 채널을 활용해 이를 홍보했고, 2023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등장한 슬로건도 다양했다. 카타르 대회에선 ‘지구 구하기’, ‘어린이 보호’, ‘기아 종식’ , ‘모두를 위한 교육’ 등의 메시지가 나왔고, 여자월드컵에서는 ‘평화를 위한 단합’, ‘여성 폭력 종식’, ‘지역민을 위한 화합’ 등 다양한 사회적 결의가 공유돼 눈길을 끌었다.
FIFA는 지난해 9월 ‘인종차별 반대 제스처’ 관련 주요 프로토콜을 만들어 모든 국제대회에 일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미국에선 조용하다. 클럽월드컵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굳이 연결짓자면 각 출전팀에 전달된 주장 완장에 새겨진 ‘세계축구연합’ 슬로건과 세계보건기구(WHO)와 파트너십 관련 문구 정도다.
그렇다고 FIFA가 노선 변경과 정책 변화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설명한 적도 없다. 이에 대해 주요 외신들이 의문을 드러낼 때마다 “FIFA는 정치적 문제에 대해 중립을 지킨다”는 허황된 답변만 반복해 내놓았을 뿐이다.
물론 추측은 가능하다. 올해 2월 필라델피아 이글스와 캔자스시티 치프스가 격돌한 ‘미프로풋볼리그(NFL) 슈퍼볼’은 2021년 2월 이후 최초로 ‘차별 반대’ 메시지가 전혀 나오지 않은 대회로 기록됐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정책과 궤를 함께 한다.
트럼프 정권의 집권 후 미국 내에선 차별금지 프로그램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대대적이고 광범위한 이민자 단속으로 공권력과 시위대가 충돌하기도 했다. 텅빈 관중석에서 확인된 클럽월드컵의 흥행 참사 배경엔 전 세계 관광객의 발걸음을 막는 강도 높은 비자 정책도 한 몫 했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오래 전부터 트럼프 행정부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해왔다. 취임식 참석이나 백악관 방문도 이뤄졌다. 1년 앞으로 다가온 2026북중미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개최국 정상들과의 협력은 이해할 수 있으나 문제는 인판티노 회장의 행적이 모순됐다는 점이다. 그는 5월에도 “차별은 잘못이 아닌 범죄다. 차별에 FIFA 홀로 맞서 싸울 수 없다”며 모두의 참여를 촉구했다.
지금으로선 이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말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FIFA는 북중미월드컵에서도 ‘no racism’ 슬로건과 관련 캠페인은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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