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업자가 상품권 피해자로 둔갑....법원 "경찰·법원을 추심 도구로 활용"

2 days ago 10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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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 거래를 가장한 고금리 사채 이용자들이 오히려 사기죄 고소를 남발하는 불법 사채업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이른바 '상품권 사채' 피해자로 행세해 온 이들이 사실상 불법 사채업자라고 판단, 사기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방법원 형사6단독 차기현 판사는 지난 19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25년 6월 네이버 카페에 '80만 원 상품권을 50만 원에 할인 판매하고, 6월 16일 지급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를 본 B씨 등 6명이 접근해 돈을 송금했고, A씨가 약속한 날까지 상품권을 지급하지 않자 사기죄로 고소했다. A씨는 2025년 10월까지 피해자 6명으로부터 11회에 걸쳐 총 330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거래의 실체가 드러났다. 상품권 매매로 보이는 이 거래는 급전이 필요한 A씨가 돈을 빌리고 고금리 이자를 얹어 상환하기로 한 변칙적 금전 소비대차 계약이었다.

차 판사는 “B씨가 A씨에게 50만 원을 빌려주고 일주일 뒤 이자 30만 원을 더한 80만 원을 상품권으로 돌려받기로 한 것이 이 거래의 실제 내용”이라며 “A씨가 제때 갚지 않으면 B씨가 경찰에 상품권 거래 사기로 고소할 수 있도록 외양을 취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두 사람이 약정한 실질 이자율은 연 3128.5%에 달한다.

차 판사는 피해자들이 사채업자처럼 정형화된 계약서 양식을 미리 만들어두고 A씨에게 내용을 채워 보내도록 한 점, 부모 연락처·주민등록등본 등 각종 서류를 요구한 점 등을 지적하며 “사채업자에 버금가는 치밀함을 보인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이 경찰에 고소할 때는 자신이 양식을 보낸 부분은 빼고 A씨가 작성해 회신한 부분만 제출해 A씨가 거래를 주도한 것처럼 꾸몄다는 점도 짚었다.

또한 “피해자들은 A씨가 급전이 필요해 상품권 거래를 가장한 고리 사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다”며 기망행위로 인한 착오에 빠진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가형벌권 발동의 정당성도 부정했다. 차 판사는 “피해자들의 변칙적인 고리 사금융 행위 역시 형사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의 채권추심을 돕기 위해 경찰 수사력과 법원의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하는 것은 궁지에 몰린 경제적 취약계층의 고혈을 빠는 고리 사금융을 국가가 권장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무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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