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사진을 정리하면서 생겼다. 촬영 당시엔 여성들을 보느라 몰랐는데 뒤에 있던 남성들이 문제였다. 어두컴컴한 점퍼 차림, 뒷짐을 지고 어기적어기적 걸음. 억지로 끌려나온 모습이다. 특히 뒷짐 모습은 사진가들에게 기피 대상이다. 무관심한 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발랄한 분위기의 사진에선 인물의 동작이 중요한데, 이게 제일 약한 분들이 ‘아저씨’들이다. 사진기자들이 날씨 스케치 등을 할 때 중장년 남성들을 가급적 피해서 찍는 이유다. 결국 징검다리 사진은 저장 폴더에서 휴지통으로 갔다.
‘여성, 아이, 동물’은 광고 사진 업계의 오래된 공식이다. 아이는 귀여움을, 여성은 고급스러움을, 동물은 친근한 이미지를 갖기 때문이다. 이 공식대로라면 좋은 광고 이미지에는 여성과 어린아이가 개나 고양이와 어울리는 모습이 등장해야 한다. 또 이 공식대로라면 피해야 할 이미지는 나이든 남성이다. 오해는 마시라. 정우성이나 차승원, 브래드 피트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아저씨’를 말하는 것이다. 나도 아저씨지만, ‘영피프티’ ‘영식스티’ 모두 마케팅 문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엔 ‘영포티’마저 조롱과 혐오 밈으로 MZ세대에게 소비되는 게 현실이다.
스포츠 패션 업계에서 쉬쉬하며 조심하는 대상도 아저씨들이다. 새로 론칭한 브랜드의 경우 아저씨들이 사기 시작하면 성장세를 멈출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소비 민감도가 가장 떨어지는 중장년 남성들이 신거나 입기 시작했다면 이미 살 사람은 다 샀다고 보는 것. 착용한 맵시도 상대적으로 떨어지다 보니 홍보는커녕 역효과만 있다고 여긴다. 기존 소비 주도층, 즉 20, 30대가 추가 구입을 안 한다고 본다. 젊은 층에 인기 있는 특정 브랜드 로고가 크게 박힌 옷을 입은 지인이 있어 “이 브랜드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의외였다. “이게 뭔지 모른다. 아들이 멀쩡한 걸 버리길래 아까워서 입은 거다.” 질문의 이유를 이분이 알았다면 무척 억울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브랜드에 악영향(?)을 끼쳤지만 “아저씨는 죄가 없다”고 항변해 주고 싶었다.비록 기피 대상이 됐지만, 그래도 불쌍하게 봐주는 시선이 있다. ‘아저씨 도감’이라는 일본 책이 그렇다. 국내에 2016년 번역 출판됐다. 저자는 일러스트레이터인 나카무라 루미인데, 거리와 주변에서 관찰한 아저씨들의 모습을 마치 동물도감처럼 소개한다. ‘나이키 모자 아저씨’, ‘편의점 캔맥주 아저씨’, ‘반바지에 구두 아저씨’, ‘살짝 불량한 아저씨’ 등등….
거리에서 눈에 딱 들어오는 사람들은 잘 차려입은 젊고 훤칠한 남녀들이다. 당연히 아저씨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투명인간처럼 존재감이 없다. 매력 없다. 그런데도 작가는 야생동물을 관찰해 분류하듯 48개 유형으로 캐리커처와 함께 에세이로 정리했다. 독특하다. 별 관심을 못 받는 ‘비주얼 약자’들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
아저씨들은 사진 모델로는 별로지만 사진기자들에게는 가장 많은 취재 대상이다. ‘아저씨 도감’ 분류법에 따르면 주로 ‘양복 아저씨’들이다. 뉴스 메이커들이 많기 때문이다. 주요 정책과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고위직도 다수가 아저씨다. 비주얼에선 약자지만 영향력에선 강자다. 물의를 일으켜 포토라인에 서는 분들 중 다수가 아저씨들이다. 카메라 앞에 서는 아저씨들에게 속으로 외쳐본다. “사진은 망쳐도 봐드릴 수 있지만, 사회에 해악을 끼치면 용서 못 받아요!” 참고로 꼰대처럼 안 보이고 그나마 괜찮은 비주얼 태도 몇 가지 소개한다. 사진 촬영할 때 주문하는 몸짓이기도 하다. ①‘八(8)’자 말고 ‘11’자 걸음(무릎 관절에도 좋다) ②뒷짐 대신 팔짱이나 ‘허리 손’ ③점퍼 차림이라면 지퍼를 꼭 채우라(재킷은 열어도 괜찮다) ④슬리퍼 외출, 정장 양말에 반바지 금지 ⑤계단 오를 때는 첫 두어 걸음을 깡충 뛰어서.신원건 사진부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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