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도박 같은 범죄 수익의 통로가 되는 대포통장이 유령회사 등의 명의로 매년 약 32만 개가 개설돼 유통되는 실태를 보도했다. 또 유령회사가 폐업 처리됐는데도 통장은 살아남아 아무런 제약 없이 온갖 범죄에 쓰이는 ‘좀비 통장’ 현상도 확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취재팀이 영국 런던과 맨체스터의 자금세탁 방지 체계를 현지 취재하고 호주와 싱가포르의 전문가들을 서면 인터뷰한 결과, 모호한 책임 소재와 관계 기관 간 소통 부족이 좀비 통장을 양산하는 구조적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은 대포통장을 공장처럼 찍어내는 유령회사를 직접 제재하는 방식으로 대처한다. 대포통장 하나하나를 막는 한국보다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영국 기업청이 국세청, 수사기관과 정보를 공유하며 유령회사를 직권으로 감독하고 등기를 말소할 수 있어 가능한 일이다. 기업청이 해산시킨 유령회사가 지난해에만 1만1500개나 된다. 한국의 경우 회사 설립 등기는 법원 등기소, 사업자 등록은 국세청, 거래 정보는 은행과 금융정보분석원으로 담당 기관이 따로따로 흩어져 있어 유령회사 해산에만 수개월이 걸린다.
호주는 2023년 국가사기방지센터 주도로 은행과 통신사 등 민관이 참여하는 금융범죄정보공유망을 구축한 후로 한 해 3조 원이 넘었던 사기 피해 액수를 2조 원대로 줄였다. 한 은행에서 대포통장을 적발하면 1초 만에 전체 참여 기관에 정보가 공유돼 범죄 조직이 돈을 빼가지 못하게 막는 구조다. 싱가포르는 경찰청 사기방지사령부에 경찰과 6개 주요 시중은행 직원이 한데 모여 일하면서 매년 수천억 원의 피해금을 회수한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과 수사기관이 참여하는 정보 공유망을 가동했지만 참여 기관에 법원과 국세청이 빠져 있어 대포통장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유령회사 감시가 어렵다. 관계 기관 간 협력을 통해 대포통장 공장으로 의심되는 유령회사를 선별해 신속히 제재하는 실시간 감시망부터 가동해야 한다. 취재팀은 유령회사를 8개 이상 차려놓고 대포통장을 찍다 금융감독원의 보이스피싱 명단에 60차례 오르고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은 사례도 확인했다. 관계 기관별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해야 서민 피눈물 나게 하는 죄를 짓고도 벌 받지 않는 사법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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