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 발달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데 반해 송전망 건설은 턱없이 지지부진하다. 정부의 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반영된 54개 송전망 건설 사업 중 20개가 지역 주민의 반대와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 지연으로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 평창군의 신평창 변전소 건설은 지역 주민의 반대로 준공이 2016년에서 2028년으로 12년이나 연기됐다. 2019년 준공 예정이었던 동해안~동서울 초고압 직류 송전망 건설은 주민 합의를 거쳤음에도 하남시가 여전히 인허가를 내주지 않아 답보 상태에 빠졌다.
정부는 송전망을 지난해 말 3만 6184C-km(서킷킬로미터, 선로 길이×회선 수)에서 2038년 말 6만 1183C-km로 2만 4999C-km(69.1%) 증설할 계획이다. 동해안과 호남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산업 수요가 큰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송전망이 주축이다. 하지만 곳곳에서 “우리 지역에는 안 된다”는 님비 여론에 가로막히고 있다. 아무리 발전소를 많이 지어도 송전망이 충분하지 않으면 전력 수급에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반도체와 AI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훼손돼 돌이킬 수 없는 국력 손실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급기야 정부가 새로 건설하는 송전선로의 상당 부분을 땅속에 묻는 지중화 방안 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반대를 완화해 송전망 확충에 속도를 낼 생각에서다. 하지만 지상 설치보다 3배 이상이나 더 드는 지중 설치 비용을 조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지중화한다고 해서 송전선로의 지역 통과에 반대하던 주민 여론이 용인하는 쪽으로 돌아서리란 보장도 없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땅속이 안 되면 바다로 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동해안에서는 안 되겠지만, 호남에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보내기 위한 송전선은 서해상으로 연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검토나 제안에만 머물 일이 아니다. 님비 현상 극복을 위한 주민 설득 노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중화든 해상 설치든 우회로도 적극 찾아 활용할 필요가 있다. AI 시대에 송전망 확충은 국가적으로 시급한 과제다. 추가로 소요되는 건설 비용 조달 문제도 지혜를 모아 속히 풀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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