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이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하는 중에 한국은행이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내놔 눈길을 끈다. 한은 연구진과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함께 작성한 이 보고서의 결론은 ‘법정 정년 연장’이 아니라 ‘퇴직 후 재고용’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이다. 노동계와 야당이 주장하는 정년 연장 방식은 부작용이 너무 커 우리 사회와 기업이 수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은 보고서는 임금체계 개편 같은 완충 장치 없이 2016년 시행된 ‘60세 정년’이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 뼈저리게 알려준다. 2016~2024년 정년 연장 대상인 55~59세 근로자가 약 8만 명 증가하는 동안 23~27세 청년 근로자는 11만 명 감소했다. 고령층 근로자가 1명 늘어날 때 청년 채용은 최대 1.5명 줄어든 셈이다. 같은 기간 출산율과 혼인율도 가파르게 추락했는데, 이 역시 준비 안 된 정년 연장이 초래한 결과다. 게다가 고령층 고용 증가 효과도 노조가 있는 대기업에 집중됐고 그마저 기업의 조기 퇴직 유도 등으로 점차 감소했음을 보고서는 보여준다.
올 2월 기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이 120만 명 이상이고 그중 아예 구직을 포기하고 ‘그냥 쉰다’는 사람도 50만 명을 넘었다.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탓이다. 정년 연장의 혜택은 대부분 이런 일자리 종사자에 집중되기 때문에 청년들의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고령층이 더 오래,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을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되긴 했지만 ‘세대 약탈’ 방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또 계속 고용을 택하더라도 즉각적인 법적 강제가 아니라 인센티브 확대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한은의 충고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21대 대통령 선거가 6월 3일 치러진다. 정확히 55일 뒤다. 어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대선 도전을 선언하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출마를 위해 사퇴하는 등 대선 주자들이 속속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는 정년 연장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려는 후보도 있을 것이다. 공약을 발표하기 전에 한은 보고서부터 일독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