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싶으면 살 빼고 성형해'…아내만 흘리는 눈물

10 hours ago 2

기사와 관련 없는 인물들입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사와 관련 없는 인물들입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뚱뚱한 거 정말 싫다. 얼굴 보면 짜증이 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편의 발언이다. 충격적인 말에 눈물을 흘리던 아내는 결국 다이어트, 지방흡입, 안면거상, 가슴 성형까지 받는다.

이후 외모가 달라지자 남편은 아내를 볼 때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짓고, 부부 관계는 '회복'된 듯한 분위기로 마무리된다.

출처=헬로tv 더라이프 '맥미걸'

출처=헬로tv 더라이프 '맥미걸'

올해 방영된 헬로TV의 '맥미걸'은 '여성의 성형으로 부부 갈등을 해결한다'는 서사를 반복하며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남편의 조롱과 무시, 아내의 눈물과 수술, 그리고 외모 변신 후 달라진 남편의 태도까지. 방송이 보여주는 이 구조는 "사랑받고 싶다면 예뻐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교묘하게 전달한다.

특히 한 고도비만 여성의 에피소드에서는 남편이 "(내 말에) 상처받았으면 좋겠다", "뚱땡이들 엄마 닮았다"고 막말을 퍼붓는 장면까지 여과 없이 방송됐다.

아내는 3개월 만에 30kg을 감량하고 눈, 코, 턱, 가슴까지 성형한 후에야 남편은 "이제는 밤늦게 내보내는 일도 없을 것 같다"며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인다.

출처=헬로tv 더라이프 '맥미걸'

출처=헬로tv 더라이프 '맥미걸'

또 다른 회차에서는 "얼굴보면 싸울 수 있잖아"라는 남편의 말에 아내가 상처받고, 성형 수술을 결심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미 쌍꺼풀과 치아 교정을 마친 상태였음에도 남편은 "속에 화가 많아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라며 아내를 계속 외면했다. 아내는 "사랑받고 싶어서 성형한다"며 외모 개선이 가정 회복의 열쇠라고 말했다.

성형 후 패널들은 "펑퍼짐한 애엄마에서 도도한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로 변신했다"며 감탄을 쏟아냈고, 딸 역시 "엄마가 예뻐져서 좋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외모 변화에 힘을 실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유튜브에서 수십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누리꾼들은 해당 영상에 "이제 헤어지고 자기 인생 살자", "예뻐지니까 태도 바뀌는 거 소름"이라는 비판 댓글을 달았다.

이어 "문제는 얼굴이 아니라 남편의 태도"라며 본질을 왜곡한 서사에 분노를 터뜨리는 반응도 이어졌다. 그러나 방송은 끝까지 성형을 문제 해결의 중심으로 다루며, 여성만이 '변해야 하는 존재'로 남겨졌다.

이같은 흐름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0년대 초 CJ ENM이 제작한 '렛미인'은 출산 후 체중이 늘어 이혼 위기를 겪는 여성이 전신 성형을 통해 남편의 사랑을 되찾는 흐름, 외모때문에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성이 성형 후 다시 남편의 마음을 얻는 서사 등을 반영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출연자만 바뀌었을 뿐 서사의 구조는 그대로다.

◆ MZ세대 10명 중 4명 시술·성형 경험있어

이처럼 외모가 관계, 사회적 인정, 나아가 '사랑'과 직결되는 구조는 콘텐츠를 넘어 광고와 플랫폼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성형·시술 애플리케이션 이용자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대표적인 성형 앱인 '강남언니'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지난해 3월 21만9373명에서 올해 3월 22만4203명으로 약 2.2% 증가했다.

'바비톡'은 같은 기간 16만9234명에서 19만3466명으로 약 14.3%, '여신티켓'은 6만9653명에서 10만6242명으로 무려 52.5% 증가했다.

강남 부근에 붙어있는 성형어플, 성형외과 광고/사진=유지희 기자

강남 부근에 붙어있는 성형어플, 성형외과 광고/사진=유지희 기자

강남역과 신논현역 일대만 둘러봐도 '예쁘면 다야', '성형이 최고의 선물’'같은 문구가 적힌 광고들이 즐비하다. 여성 모델을 앞세운 성형 광고가 지하상가 곳곳에 배치되며 외모 기준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다. 여성들은 일상에서 "예뻐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반복 학습하고 있는 셈이다.

2030을 위한 경제미디어 '어피티'가 지난해 MZ(밀레니엄+Z)세대 12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98.1%가 "외모가 사회적 혜택에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시술이나 성형을 경험한 비율은 39.2%였으며 가장 큰 이유는 '콤플렉스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구독자 117만 명을 보유한 뷰티 유튜버 '써니채널'도 최근 이러한 외모 강박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유튜버로서 내 얼굴이 적합하지 않다고 느꼈고, 계속 얼굴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어릴 때 피부 트라우마로 생긴 '남들이 내 얼굴을 어떻게 볼까'라는 불안이 늘 따라다녔다"고 털어놨다.

◆ "부부간 불화 '공동 해결 능력' 본질 외면한 채 여성의 외모만 탓해"

출처=CJ ENM 유튜브 '렛미인'

출처=CJ ENM 유튜브 '렛미인'

전문가들은 "사랑받기 위해선 예뻐져야 한다"는 서사가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광고를 통해 전방위로 재생산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여성에게만 외모 관리의 책임을 전가하고 성형을 '정상화'하며 사회적 강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여성에게 외모는 일종의 '매력 자본'으로 여겨지며 결혼 전에는 상향혼(조건 좋은 남성과의 결혼)을 위한 주요 자산이 되고, 결혼 후에는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남편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계속 유지해야 하는 1순위 자산으로 간주된다"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한 삶의 변수 속에서 장단점을 함께 품어내는 공동 해결 능력이 중요한 결혼생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살을 빼고 예뻐져야 남편을 붙잡을 수 있다'는 강박이 여성은 늘 사랑을 구해야 하는 존재라는 왜곡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이런 서사는 부부 간 신뢰가 깨졌을 때조차, 여성의 자기 관리 부족으로 인한 문제로 여겨지게 한다. 결혼이라는 복잡한 삶의 여정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셈"이라며 "이제는 결혼 후에도 사랑과 화합을 위해 여성의 다이어트, 시술, 안티에이징이 필수가 된 사회에서 여성의 외모 강박은 곧 돈이 되기 때문에 '외모 관리가 곧 나의 안정, 가족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주입해 성형·안티에이징 산업의 확장과 자본시장 내 여성 불안감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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