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투자를 미루고 빚 갚는 데 치중하고 있다. 신규 사업에 투자하기엔 내수 부진과 관세 전쟁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판단해서다.
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발행된 회사채 36조2630억원 가운데 81%인 29조6047억원이 부채를 갚는 데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운영자금으로 5조6231억원(16%)을 썼고, 시설자금에 쓴 금액은 1조352억원(3%)에 불과했다. 상반기 회사채 발행 물량 중 채무상환에 쓴 자금의 비중은 2022년 61.2%, 2023년 74.5%, 2024년 74.5%, 2025년 81%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금감원이 201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고 수준이다.
신규 투자는 사실상 멈췄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을 제외하고 대규모 설비투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상반기 정기 신용등급 평가에서 석유화학, 2차전지 등 투자가 멈춘 업종은 직격탄을 맞았다.
나이스신용평가·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 등 3대 신용평가사는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을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하향 조정했다. 핵심 계열사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롯데지주·롯데물산·롯데렌탈·롯데캐피탈 등의 신용등급이 무더기 강등됐다.
LG화학의 신용등급 전망도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로 하락했다. SK가스 계열사 SK어드밴스드의 신용도는 A-(부정적)에서 BBB+(부정적)로 떨어지는 등 총 6개 석유화학 기업의 신용등급 및 전망이 하락했다.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 엔켐 등 2차전지 업체의 신용등급도 한 단계씩 떨어졌다. 석유화학과 2차전지 모두 중국의 과잉생산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은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건설업계는 지방 부동산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롯데건설의 신용등급이 A+에서 A로 한 단계 하락했다. 동원건설산업의 신용등급은 BBB(부정적)에서 BBB-(안정적)로 떨어졌다.
나이스신용평가는 72곳의 신용등급을 조정했는데 하향이 43곳(60%), 상향은 29곳(40%)이었다. 한기평은 하향 33곳(60%), 상향 22곳(40%)으로 집계됐다. ‘신용도 저하→자금난 심화→신용도 추가 하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건설은 신용등급 하락 직후 진행한 1100억원 규모의 회사채가 전량 미매각됐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