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와 함께… “읽고 나면 분명 상쾌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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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유독 생각나는 책… 5인5색 추천 도서
언니-동생과 함께 본 만화 ‘레드문’
따뜻하게 바라본 비 ‘우리가 함께…’
상쾌한 우울 가르쳐준 단편집 ‘레몬’
뜻밖의 위안을 선물해 준 ‘픽션들’
동물 친구와 여행 ‘이토록 굉장한…’

건축가 강미현 씨(52)에게 장마는 황미나 작가의 공상과학(SF) 만화 ‘레드문’을 떠올리게 한다. 중고교 시절 다섯 남매가 다음 권을 먼저 읽으려고 다툴 만큼 푹 빠져 읽었던 작품이다. 평범한 고교생인 줄 알았던 주인공이 머나먼 행성에서 쫓겨난 존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장마 때면) 지붕 위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고, 처마 끝에선 빗물이 하루 종일 흘러내렸죠. 언니, 동생들과 툇마루에 나란히 엎드려 찐 옥수수를 먹으며 만화를 돌려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장마철 빗소리와 함께 선명하게 떠올라요.”

비가 오는 날이면 유독 생각나는 책이 있다. 친구나 형제들과 돌려 읽던 만화, 비 오는 창가에서 읽어야 제맛인 소설, 장마를 ‘오랫동안 세수하는 일’처럼 바라보게 만든 단편집…. 시인과 건축가, 수의사, 번역가, 독립서점 대표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펴낸 경험이 있는 다섯 사람에게 ‘장마철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 한 권’을 물어봤다.

경북 경주시에서 독립서점 ‘어서어서’를 운영하는 양상규 대표(42)는 박준 시인의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를 추천했다. 박준의 첫 시집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좋아하는 고객들에게 가장 먼저 권하는 책이기도 하다.

양 대표는 “한 사람의 곁에 오래 머무는 마음을 기록한 시집”이라며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비를 바라보는 시간이 얼마나 따뜻한지 조용히 알려준다”고 했다.

한국 문학 출판사 ‘아침달’의 편집자이기도 한 서윤후 시인(36)은 일본 소설가 가지이 모토지로의 ‘레몬’을 꼽았다. 병자의 불안과 우울을 그렸지만 끝내 삶을 긍정하는 단편집이다. “‘침착하게 한 번 달콤한 눈물을 흘리고 보니 그것은 상쾌한 우울이었다’는 문장에 기대어 장마를 ‘오랫동안 세수하는 일’처럼 바라보게 됐어요. 그 뒤엔 언제나 레몬빛으로 맑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등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노승영 번역가(53)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실린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추천했다. 자신이 본 모든 것을 기억하는 주인공을 통해 기억의 축복과 저주를 그린다. 노 번역가는 “빗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보면 꼭 기억하고 싶은 얼굴이나 사건이 마치 퍼즐의 빈자리처럼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 속상할 때가 있다”며 “천재적인 기억력의 대가로 다른 걸 잃어야 했던 푸네스를 떠올리면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52)는 동물의 감각을 다룬 에드 용의 과학서 ‘이토록 굉장한 세계’를 권했다. 그는 “인간은 비가 오면 시야가 흐려졌다고 느끼지만, 청각으로 사냥하는 올빼미는 비를 통해 세상을 오히려 선명하게 본다”며 “만물의 윤곽이 빗소리의 강약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변에서 ‘평생 동물원에만 있으니 지루하지 않느냐’고 물어요. 하지만 저는 인간을 초월한 동물들의 경이로운 감각을 상상하며 매일 새로운 여행을 떠나죠. 그래서 이 책은 제게 여행 가이드북이기도 합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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