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원강서원비 이전 요구 목소리
마을 주민 “재산권 침해 대책 필요”
강원 영월 사람 사당이 왜 울산에?
엄홍도 세조 피해 울산에 숨어 살아
조선시대 충신 엄홍도의 충절을 기리는 울산시 문화유산자료 제10호 원강서원비(울산 울주군 삼동면)가 이전 논란에 휩싸였다. 엄홍도는 강원도 영월 사람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충신 반열에 올랐다.
최근 삼동면 주민들은 홍성우·김종훈 울산시의원을 찾아 원강서원비로 인해 재산권 행사에 피해를 보고 있다며 비석 이전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들은 “삼동면과 아무런 관계없는 비석 때문에 토지 가격, 매매, 건축심의, 각종 규제 등 주민 재산상 피해가 상당하다”며 “비석을 이전하든지, 문화유산 자료 지정을 해제해야 한다. 불가능하다면 주변 반경 500m 이내 토지와 건축물에 대해 각종 규제를 해제해 달라”고 주장했다.
국가유산포털 등에 따르면 원강서원비는 왕의 명령으로 순조 20년(1820년) 세워졌다. 비석 돌은 최상급으로 강화도에서 배로 실어 옮겼다. 애초 울산 울주군 온산읍 대정리에 있었으나 해당 지역이 공단으로 개발되면서 1994년 삼동면 둔기리로 옮겨졌다.
울산시는 비석 이전 요구 관련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지만 원강서원비 소유권이 영월 엄씨 문중에 있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울산시는 “개발과 보존의 중간 위치에서 고민이 크다. 역사문화환경보호구역 변경 등 민원 해결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이전 논란과 별개로 강원도 영월 사람 엄홍도가 울산으로 오게 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엄홍도는 단종의 시신을 동강에서 건져 문중 선산에 묻은 뒤 세조의 보복을 피해 종적을 감췄다. 이후 행적은 기록된 바 없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울산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영월 엄씨 문중에 따르면 엄홍도는 아들 3형제와 안전한 곳을 찾아 남쪽으로 피했다. 충남 공주를 거쳐 경북 청송, 경주에서 잠시 살다 울산 언양까지 내려왔다. 엄홍도와 후손들은 울산의 심심산골에서 신원이 회복될 때까지 성을 쓰지 않고 200년간 숨어 살았다.
엄홍도 후손인 엄주환 울산향교 전교는 “신분을 숨긴 채 숨어 살다 보니 신원 회복 전 가문의 역사는 구전으로 전한다”며 “충의공은 사후 충절을 인정받아 불천위(不遷位·사당에서 위패를 옮기지 않고 영구히 제사를 지내는 것) 은전을 받았는데 울산에서 불천위를 받은 가문은 드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