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더 이상 재즈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재즈’ 했을 때 떠올리는, 검은 양복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작은 클럽에서 익숙한 스윙 리듬에 손가락을 둠치치 둠치 놀리고 우리는 솔로가 끝날 때 박수를 쳐주고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며 그저 BGM처럼 즐기는, 그것만이 재즈가 아니다.
지난 4월 11일, 떠오르는 재즈계의 샛별들이 서울 성수아트홀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재즈를 선보였다. 바로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의 내한 공연이다.
재즈 전문 공연 기획사 재즈브릿지컴퍼니의 기획으로 10~13일 서울, 전주, 세종에서 세 사람의 감각적인 연주가 펼쳐졌다. 피아노의 마티스 피카드, 드럼의 조에 파스칼, 베이스의 파커 맥앨리스터 등 평균 연령 30세의 이 젊은 연주자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내로라 하는 경력과 스킬을 보유한 실력자들이다. 단순한 패기 뿐 아니라 부드러운 깊이까지 더해져 그 나이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들은 다채로운 국적과 음악적 소양을 갖고 있다. 프랑스, 마다가스카르 혼혈인 마티스는 어린 시절부터 영국, 프랑스, 미국 등 다양한 지역을 오가며 음악 활동을 펼쳐왔다. 남들이 글을 배울 때, 자신은 피아노로 말하기를 즐기면서 여러 환경에서 쌓은 다채로운 경험과 문화들을 통해 그의 연주를 훨씬 풍성하게 만들어왔다.
영국 출신 조에의 단단한 감각과 재즈의 성지 브루클린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파커의 세련된 연주 기법은 마티스의 문화적 정체성과 어우러져 미국답지 않은 재즈, 재즈 같지 않은 재즈를 가능케 했다.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돼 단숨에 기대를 산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 그들은 2023년 마티스가 발표한 'Heat of the Moment'의 수록곡들을 주로 연주하며 그가 삶을 대하는 깊은 진심을 음악으로 소개했다.
마티스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마치 초신성이 폭발하듯 큰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연주를 하는 내내 어깨를 들썩이고 다리를 크게 움직이는 마티스의 연주는 창의적이다 못해 음악으로 자신의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 같았다. 음악 속에서 여러가지 색깔이 날아다니는 게 느껴졌다.
'이것은 스윙이다', '뉴올리언스다', '아프로큐반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는 음악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재즈를 넘어서 마티스를 필두로 세 사람은 각자의 풍부한 색을 강렬하게 뒤섞어내고 있었다. 재즈의 장르적 분별을 떠나 새로운 도전 의식을 기반으로 자신들만의 새로운 재즈를 창작해내는듯 했다. 신들린 것 마냥 피아노를 두드리는 마티스와 그의 연주를 들어주고 받쳐주는 두 사람.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는 말그대로 음악에 완전히 파묻혀 형형한 색깔을 그려냈다.
하지만 공연 시간 내내 마냥 신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마티스의 연주 사이엔 '비움' 또한 존재했다. 숨가쁘게 달려가다가도 잠시 손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을 깊이 느끼는듯한 마티스의 모습이 종종 보였다. 그의 자작곡 'The Space Between Breath'를 소개하며 명상을 통해 마음을 비우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삶의 모든 것이 가득 차 있기만 하면 비움에서 오는 또 다른 신선함을 쉬이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마티스는 연주의 모든 순간을 가득 채우지 않았다. 오히려 멈추고 비움으로써 음과 음 사이의 잔음과 진동 또한 음악이 되도록 했다. 그 빈 순간을 곱씹고 음미하며 더 새로운 감각을 느끼도록 만들어낸 것이다.
보통의 재즈 라이브 연주는 각 연주자들이 한 곡에서 각자의 솔로 즉흥 연주 파트를 순서대로 이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각 연주자의 솔로가 끝나면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호응하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의 솔로 연주는 종래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이어졌다. 누가 즉흥 연주를 하고 있는지, 어떤 이가 어떤 식으로 대화를 시작하는지 정해진 바 없었다. 모든 연주들이 하나의 예술처럼 물흐르듯 이어져서 박수가 몰입을 해칠까 감히 치기 어려웠다. 연주자 뿐 아니라 관객까지 홀린듯 그들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는듯 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딱딱하게 굳어서 보는 공연은 아니었다. 관객들은 그들의 세계 속에서 음을 느끼고, 만지고, 즐기며 고개를 까딱이거나 손으로 박자를 맞추거나 마티스의 주도로 같이 박수를 치고 특정 음을 따라 불러 코러스를 만드는 등 모두가 무아지경 속에서 뒤섞이듯 음악을 만들어냈다.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가 가진 다채로운 정체성 만큼이나 다양하고 자유로운 시간이 이어진 것이다.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의 음악은 한 마디로 경계 없는 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마티스 자신의 내부에서, 삶에서의 경계를 흐리고, 트리오 멤버들 간의 경계를 흐리고, 관객들 간의 담을 허물고, 재즈 세계와 음악 세계의 분별을 허물었다. 어떤 장르나 리듬으로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자신만의 새로운 색을 만들어 마티스 피카드만의 색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물들였다.
우리는 여태 너무나 단순한 확신으로 나와 서로의 가능성을 단정 짓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한계에 더 많은 창의와 표현을 나도 모르게 포기하진 않았는가 의심하게 만드는 공연이었다. 꼭 따라야만 하는 음악적 법칙이나, 정해둔 장르적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바라볼 때 우리는 더욱 새로운 예술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려움 없이, 여태 채워낸 것을 과감하게 비워내고서야 만났을 마티스 피카드만의 음악적 색깔들. 그를 통해 더 이상 재즈는 재즈가 아님을, '너'는 '너'가 아니고 '나'는 '나'가 아님을 느끼며 더 많은 예술 창작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민예원 '스튜디오 파도나무' 대표•작가
[ ♪ Mathis Picard Trio - The Space Between Breath (Live At The 1905) / 출처. Mathis Picard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