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이사구 지음/336쪽·1만7000원·황금가지
가장 몰입해서 읽은 부분은 책 제목과 같은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인데 읽으면서 나는 직장 상사에게 악령이 들려서 상사가 얌전해지고 후배들의 말도 잘 들어주고 쓸데없는 잔소리나 지시를 하지 않게 되면 그 악령을 꼭 퇴마해야 하는지 상당히 진지하게 고민했다. 굳이 부적 제작자로 커리어 전환을 하지 않아도 주인공은 그냥 악령 들려서 착해진(?) 상사 밑에서 직장 생활을 잘하면 되지 않겠는가? 물론 상사는 악령이 들렸기 때문에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동료들을 공격해서 심장을 꺼내 먹으려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상사는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가? (아닌가?)
그런데 21세기 한국 장르문학에서 주인공은 굳이 환상을 판단하거나 걸러내지 않는다.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사건들이 벌어지면 주인공은 비현실적 상황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의 힘은 바로 이런 탄탄한 현실 감각이다.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독자로서 가장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사구 작가는 부적, 주술로 정화한 팥, 저주 인형과 양초 등 환상적인 힘을 가진 도구들을 사용해 고달픈 현실을 깨부수는 이야기를 통쾌하게 펼친다. 악귀를 잡는 장면은 매번 박진감이 넘친다. 연작의 첫 번째 작품인 ‘벽간 소음 상호 결별부’에 등장했던 악귀가 마지막에 다시 등장해 충실한 이야기 구조와 함께 신선한 위기와 반전을 선보이기도 한다. 드라마로도 제작된다는데, 원작이 이렇게 재미있다 보니 화면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무척 궁금하다.
정보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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