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레슨실에서 수많은 학생을 마주하다 보면 유난히 실력이 빨리 느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부터 압도적인 음색이나 성대를 타고난 천재들과는 결이 다르다. 시작은 평범하거나 도리어 뒤처져 보이기도 하는데,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 무서운 속도로 치고 나간다.
실력이 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본인이 변화를 느낀다. 어제까지 막히던 프레이즈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고음연결이 조금씩 편안해진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주변 사람들도 그 변화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스스로 실력을 확신하며 성취감을 얻는 순간, 성장에는 무서운 가속도가 붙는다.

음반 녹음을 하게 되면 대여섯 글자의 짧은 한 프레이즈도 몇십 번씩 반복해서 부르게 된다. 그 과정에 수많은 피드백이 오고가는데 이렇게 자기효능감이 올라간 사람들은 피드백을 수용하는 내면의 태도부터 다르다. '거기 음정이 불안한데'라는 코칭을 들을 때 이들은 눈치를 보거나 위축되지 않는다. 그러한 지적을 나라는 존재에 대한 비난이나 평가가 아닌 발전을 위한 가이드로 받아들인다. 그런 모습에서 선생님이나 디렉터를 온전히 내 편이라고 확신하고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이들은 질문도 적극적이고 틀리는 것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사실 레슨실에서는 조금 과감하게 틀리는 편이 훨씬 낫다. 무대에서는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연습실에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과감하게 시도하는 학생일수록 문제의 원인이 선명하게 보이고 명쾌하게 답을 찾기 수월하다. 원인이 투명하니 해결도 빨라진다. 옷을 재단할 때 천에 접힌 곳이 없게 전체를 넓게 펼쳐놓아야 정확한 가위질이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많은 학생들은 지적받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노래한다. 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희열의 모먼트를 끌어내야 하는 예술에서, 이러한 방어적인 자세는 베스트를 찾는 시간을 꽤 많이 돌아가게 만든다. 반면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도 내보고 저렇게도 시도하는 친구들과는 생각지 못했던 창작의 순간을 마주하곤 한다. 이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순간, 레슨은 일방적인 교정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이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평가받는 데 너무 익숙하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그렇다. 괜한 질문을 던졌다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것보다 적당히 묻혀가는 게 나을 때가 많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처럼, 조직 생활에서는 그 말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악이란것 예술이란것은 정답을 맞히는 일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고 만들어 가는 일이다. 무언가를 덮고 감추는데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
유도나 합기도를 배울 때 맨 처음 공격법을 배우지 않고 낙법을 먼저 배운다. 잘 떨어지는 법을 알아야 부상 없이 다음 단계를 배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분석하여 자산으로 삼는 일본의 '실패학'의 맥락도 이와 같다. 레슨실 역시 마찬가지다. 부상 없이 안전하게 떨어지는 법을 먼저 익혀야, 비로소 다음 단계의 성장을 흡수할 힘이 생긴다.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 보면 멀리 가는 사람은 언제나 가장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서툰 현재를 숨기지 않고, 기꺼이 수정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성장과 발전은 잘하는 사람의 특권이 아니라, 수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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