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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상하농원 수목원을 둘러 보았다. 상하수목원은 상하농원 안에서 가장 자연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지난해 문을 열었다. 전체 약 1만5000평 규모로 14만2000그루가 넘는 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 수목원은 ‘자연, 역사, 쉼’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꾸며졌으며 기존 숲을 최대한 살려 만든 것이 특징이다.
첫 번째는 ‘치유의 숲 정원’으로 파머스빌리지 안뜰에서 시작되는 산책길을 따라 전통 향기가 나는 식물과 먹을 수 있는 작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걷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이다. 두 번째는 ‘팽나무 숲 정원’이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팽나무 144그루가 자라고 있고 그 옆으로는 리틀버니 그라스와 함께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마지막은 ‘고인돌 숲 정원’으로 고창 지역에서 발견된 고인돌 유적을 중심으로 꾸며진 역사 정원이다. 수국 꽃밭과 나무 그늘 아래 쉬는 공간이 함께 있어 산책하며 머물기 좋다.
상하농원 곳곳에서는 라벤더 축제를 알리고 있었다. 이정표가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자 라벤더 정원이 펼쳐졌다. 상하농원이 올해 새로 조성한 잉글리시 라벤더 정원은 6월을 맞아 마침 만개한 상태였다. 무려 2000평 규모 정원에 심어진 약 1만2000 주의 라벤더가 보랏빛 물결을 이루고 라벤더 향기가 퍼졌다.
라벤더 꽃길을 따라 산책하며 곳곳에서 사진을 찍기 좋게 마련된 포토존도 만났다. 특히 떡갈나무 그늘 아래 꾸민 포토 스팟은 인증샷 명소가 될 만했다. 하태연 조경팀 담당자는 “수목원을 조성하기 전부터 이 자리에 있던 떡갈나무”라면서 “수형이 보기 드물게 예뻐서 귀하게 보존하고 주변을 라벤더밭으로 의도적으로 조성한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보랏빛 풍경 사이를 걷는 이 산책길은 단순한 구경을 넘어 오감으로 힐링을 선사하는 공간이었다. 라벤더꽃이 주인공인 만큼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체험도 있었다. 농원 내 파머스카페에서는 6월 한정 판매되는 라벤더 아이스크림이 인기였다. 라벤더 아이스크림은 진한 보랏빛이었지만 인위적이지 않고 은은하게 나는 맛과 향기가 매력적이었다. 농원 관계자는 “올해 처음 본격적으로 피어난 라벤더를 활용해 특별 메뉴와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농원 숙박객을 위한 라벤더 입욕제도 한정 콘텐츠로 선보였다. 라벤더 정원 옆 노천 스파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보랏빛 꽃을 눈에 담고 향기를 피부로 느끼며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라벤더 정원의 향취를 느낀 뒤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야외 수영장으로 향했다. 상하농원은 올여름을 맞아 6월 20일부터 8월 말까지 대형 야외 수영장을 운영 중이다.
마침 우리가 찾은 날은 초여름 프리오픈 기간으로 이날 하루 300명의 방문객이 입장했다고 한다. 달팽이 모양으로 꾸며진 유아용 온수풀과 50m 길이의 국제 규격 대형 풀이 나뉘어 있어 어린아이들도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고 어른들도 자유롭게 수영하며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초록 들판과 숲이 어우러진 숲 속 물 위에 몸을 맡기자 마치 외국의 한적한 휴양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영장 한쪽에는 어린이용 미끄럼틀과 함께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푸드존도 마련돼 있었다. 상하목장에서 직접 만든 수제 소시지와 삿뽀로 생맥주를 맛볼 수 있었고 맛과 품질에 비해 가격도 합리적인 편이었다. 썬베드2개와 파라솔고 구성된 자리도 만 원에 대여할 수 있다.
수영장은 글램핑 시설인 파머스 글램핑 구역 바로 옆에 위치했다. 숙박객에게는 수영장 무제한 이용 혜택이 있어 특히 한 여름 수영장이 개장하는 기간에는 파머스 글램핑 구역이 가장 먼저 예약이 마감된다고 한다. 파머스 글램핑은 자연 속 캠핑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에어컨과 매트리스를 포함한 침구류, 냉장고 등이 갖춰져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하게 머물 수 있다. 텐트 안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어 불편함 없이 캠핑의 낭만을 즐기기에 제격이다.상하농원은 계절별 테마 외에도 연중 운영되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바른 먹거리의 가치를 전달한다. 가족 단위로 참여할 수 있는 체험교실에서 우리 가족은 수제 소시지 만들기에 참여했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고기를 반죽하고 천연 케이싱에 채워 넣으며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완성해 가는 시간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식재료의 소중함을 배우는 교육적 경험이었다. 저녁이 되자 아이들이 직접 만든 소시지를 글램핑장 앞 그릴에서 구워 먹었다. 불 앞에서 익어가는 소시지를 바라보며 아이들은 연신 “이건 내가 만든 거야”라며 자랑을 늘어놓았고 한 입 베어문 뒤에는 자신들의 솜씨에 뿌듯해했다.상하농원 체험교실은 소시지 외에도 치즈, 찹쌀고추장, 잼, 소시지 핫도그 만들기 등 총 네 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으며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체험을 마친 뒤에는 농원 곳곳에 있는 다섯 개의 공방을 둘러보며 먹거리가 완성되는 과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햄공방, 과일공방, 발효공방, 카스텔라공방, 참기름공방 등 각 공간은 유리창 너머로 생산 과정을 보여줘 아이들의 교육 효과를 배가시켰다. 각 공방 생산제품은 모두 해썹(HACCP) 인증을 받은 위생적인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있었다.
특히 햄공방에서는 상하농원의 대표 제품인 브랏부어스트 소시지를 비롯한 수제 육가공품이 정성스럽게 제작되고 있었다. 유형민 햄 공방장은 “제품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하루 800여 개에서 많게는 1300개까지 수제 소시지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량 공장이 아니다 보니 이 정도가 최대치라고 했다. 그만큼 정성을 들여 만들기 때문에 맛과 품질을 자신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특히 소시지의 경우 천연 양장이나 돈장 케이싱을 사용해 육즙을 풍부하게 살린 것이 특징이다. 너도밤나무로 훈연의 향을 진하게 입혔다고도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마음 놓고 먹일 수 있는 햄과 소시지를 만드는 것이 보람”이라는 유 공방장의 말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실제로 우리가 앞서 체험교실에서 만든 소시지 역시 이곳 햄공방장의 노하우로 개발된 레시피를 따른 것이다.
발효공방에서는 직접 담근 된장∙간장과 제철 농산물로 만든 장아찌 등을 생산하고 있었고 간장을 이용한 간장게장도 판매 중이었다. 과일공방에서는 고창 과일로 잼과 청, 콩포트 등을 만들고 있었다. 빵공방에서는 농원에서 난 달걀과 우유 등 신선한 재료로 건강한 카스테라를 구워내고 있었다. 상하농원 공방 제품들은 농원 내 마켓을 통해 바로 구매할 수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온라인 자사몰이나 일부 백화점, 컬리, 쿠팡 등 유통 채널을 통해서도 판매망을 넓혀가고 있다고 한다. 농장에서 갓 만든 건강한 먹거리를 더 많은 소비자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상하농원은 농업, 관광, 교육이 어우러진 6차 산업의 대표 모델을 지향한다. 이 특별한 공간은 매일유업 창업주 고(故) 김복용 선대회장의 선견지명에서 비롯됐다. 그는 1980년대 후반 ‘낙농업의 미래는 유기농에 있다’는 신념을 품고 청정 지역을 찾아 나섰고 연고도 없던 전북 고창 상하면을 선택해 1989년 유기농 치즈 공장을 세우며 매일유업과 고창의 인연이 시작됐다. 고창은 유기농 낙농에 최적화된 자연환경을 갖춘 지역으로 그는 지역 목장을 다니며 상하목장 브랜드를 세우는 기틀을 마련했다.
고창은 국내 최초로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비옥한 황토와 맑은 공기, 해풍과 적절한 강우량 등 유기농 낙농에 최적화된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의 뒤를 이은 김정완 현 매일유업 회장은 2006년 일본 미에현의 ‘모쿠모쿠 농장’을 방문한 뒤 농업과 관광을 결합한 체험형 농장에 대한 영감을 얻어 상하농원 프로젝트를 본격화했다. 이후 8년간의 준비를 거쳐 2016년, 전북 고창에 상하농원이 문을 열었다.
개관까지 총 370억 원이 투입됐으며 이 중 270억 원은 매일유업이, 나머지 100억 원은 국비와 지방비가 지원됐다. 개장 이후에도 매일유업은 시설 확장과 콘텐츠 개발에 꾸준히 투자해왔고 지금까지 누적 투자금은 970억 원을 넘어섰다. 숙박 시설인 파머스빌리지, 상하수목원, 라벤더 정원, 수영장, 놀이터 등은 모두 이 추가 투자를 통해 조성된 결과물이다.그러나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현재까지 상하농원의 수익성은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 팬데믹 등의 영향도 겹쳐 개장 이후 적자가 지속되었고 아직 흑자 전환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유업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연간 20만~30만 명의 관광객이 상하농원을 찾고 있다”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가치 역시 크다“고 강조했다. 당장의 숫자보다는 건강한 먹거리 문화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확산과 매일유업 브랜드 자산 축적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 회사 측 입장인 것이다. 김정완 회장은 “숫자만 쫓아가서는 돈을 벌 수 없다. 소비자와 농가, 지역주민이 만족하면 기업은 저절로 돈을 벌게 된다”고 누차 밝히며 눈앞의 이익보다는 올바른 먹거리와 상생이라는 초심을 지켜가고 있다. 상하농원이 기업의 일방적 이윤 추구가 아닌,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가치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배경이다.
상하농원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숙소 투숙객에게 제공되는 조식 뷔페는 공방 제품들로 채워진다. 햄공방의 수제 소시지와 베이컨, 치즈공방의 치즈, 빵공방의 갓 구운 빵, 발효공방의 장아찌와 저온압착 참기름까지. 각 메뉴 옆에는 사용된 공방의 이름이 안내돼 있어 단순한 식사를 넘어 먹거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떠올리게 했다.상하농원 곳곳에는 ‘짓다·놀다·먹다’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이는 정직하고 바른 먹거리를 직접 짓고 함께 놀며 즐긴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건강한 먹거리 문화를 확산시키고 소비자와 농가,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상하농원의 본질“이라며 ”기업의 숫자보다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연과 먹거리, 교육과 휴식이 공존하는 상하농원은 단순한 농촌 체험 공간을 넘어 ‘함께 잘 사는 삶’을 구현하는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금계국과 라벤더로 물든 초여름의 농원을 떠나며 다음 계절에는 또 어떤 얼굴로 반겨줄지 기대하게 되는 곳이었다.
황소영 기자 fang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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