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적정량 이상 섭취하면
세포내 에너지 생산기능 저하
DNA 손상시키고 노화 빨라져
30% 덜 먹으면 수명연장 효과
세포 '회춘 실험' 성공한 저자
노화속도 늦추려는 노력 강조
1999년 프랑스 몽펠리에 한 국제회의에서 장수에 관한 놀라운 결과가 공개됐다. 이탈리아 서남부 사르데냐 자치주 바르바자 지역에 100세 이상 고령자가 예외적으로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연구자 잔니 페스는 이 지역을 파란색 동그라미로 칠하며 최초의 장수촌, 블루존의 탄생을 알렸다. 인구 10만명당 100세 이상 고령자가 31명에 달했고, 오지 마을에서는 주민 5명 중 1명이 90세를 넘겼다. 이들은 평생 농부나 목동으로 일하며 가족과 함께 살아가다 생을 마감했다.
블루존의 비밀은 특별하지 않다. 건강한 지중해식 식단, 규칙적인 신체활동, 강한 사회적 유대, 스트레스를 피하는 낙관주의가 핵심이다. 일본 오키나와 역시 비슷한 원리를 보여주는 대표적 블루존이다. 1만명당 6.5명의 100세 이상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들은 '하라하치부'(배부르기 전에 그만두는 식사법)를 실천하며 칼로리 섭취를 줄인다. 1733년 벤저민 프랭클린이 "오래 살고 싶다면 적게 먹으라"고 한 말을 실천한 셈이다.
세포 역노화 과정을 세계 최초로 입증한 프랑스 노화과학 최고 권위자 장 마르크 르메트르는 신간 '노화 해방'을 통해 소식 습관이 장수의 열쇠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 에너지 생산 공장으로, 그 기능 저하는 세포 노화의 주된 원인이다.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면 미토콘드리아에서 활성산소가 더 많이 생성돼 DNA 손상과 노화를 촉진한다. 반면 적게 먹으면 활성산소 생성이 줄어들어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실제로 붉은털원숭이와 회색쥐여우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칼로리 제한을 실시하자 수명이 50% 늘어났다. 저자는 균형 잡힌 식단과 함께 평균보다 30% 적게 섭취하는 것이 수명 연장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유행하는 '간헐적 단식' 역시 당분 공급을 차단해 세포가 '스트레스'를 인식하게 만들고 이때 시작되는 '자가포식'을 통해 세포를 새롭게 재생시킨다. 이는 마치 세포의 '회춘'과도 같다.
2007년 일본 의학자 야마나카 신야 연구팀은 성인의 피부 세포를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줄기세포로 되돌리는 것에 성공했다. 이 실험으로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수정란이 배아가 되면 줄기세포가 만들어지는데, 이 줄기세포는 다양한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미 분화된 성인 세포를 '재프로그래밍'해 배아세포처럼 다양한 세포로 분화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세포가 바로 '유도만능줄기세포'다. 시력 회복이나 걷기 능력 회복, 사지 재생의 가능성을 연 것이다.
저자가 이끄는 연구팀도 2011년 100세를 넘긴 고령자를 포함한 실험 참가자들의 노화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고령 환자의 세포를 재프로그래밍하고 재분화한 뒤 젊게 만든 상태로 다시 환자에게 이식하는 방법이다. 청소년기 이후 이른 시기에 딱 한 번만 재프로그래밍을 거쳐도 긍정적 효과가 최대 80세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노화로 인해 병에 걸린 생쥐에 이 방식을 투입했더니 수명이 15% 정도 늘어났다.
텔로미어라는 염색체 끝부분의 '시계'도 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이 반복될 때마다 점차 짧아지며 이 길이 단축이 세포 노화의 핵심 지표다. 텔로머레이스라는 효소는 텔로미어를 연장하며 세포 수명을 늘릴 수 있는데, 최근 연구는 이를 활용한 치료법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실감하는 말이 있다. '몸은 늙지만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10~89세 50만2548명을 대상으로 '스스로를 몇 살이라고 느끼는지' 온라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24~27세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실제 나이와 체감 나이가 일치하지 않았다. 30세 이상은 보통 실제 나이보다 두세 살 더 젊게 자신을 생각했다. 50세 응답자들은 자신을 40세 정도로 느끼고 희망 나이로는 37세를 꼽았다.
자신을 실제 나이보다 젊게 인식하는 이러한 불일치는 비극이 아니다. 자신이 젊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건강한 삶을 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과 치매 위험도 낮아졌다. 유전자와 수명 사이 연관성도 초기 연구에서는 30%로 높았는데 점차 낮아지더니 최신 연구에서는 7% 이하로 떨어졌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보다 '먹기' '움직이기' '스트레스 피하기' '사회적 유대감 갖기'라는 기본 원칙에 충실하다면 '늙지 않는 삶'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르메트르는 "죽음은 노화의 결과지 나이 탓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정기 건강검진에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하는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화 관련 질환의 조기 발병 위험률을 파악하고 노화를 늦추며 축적된 노화 세포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노화를 피할 수 없다'며 담담히 받아들이기보다 노화를 질병으로 인식하고 밥상과 생활 리듬을 바꿔 노화 자체에 도전할 때다.
[이향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