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발레 학원을 찾았다. 지루하고 힘들고 재미가 없었다. 1년 뒤, 우연히 ‘호두까기 인형’ 공연에 출연하게 됐다. 처음으로 무대에서 박수를 받았다. 기뻤다. 그 순간 발레리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국립발레단 단원 김별. (사진=국립발레단) |
국립발레단이 올해 ‘호두까기 인형’의 새로운 주역으로 발탁한 발레리나 김별(21)의 이야기다. 김별은 지방 공연에 이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 이번 ‘호두까기 인형’에서 주인공 마리 역을 맡았다. 발레 무용수에게 ‘호두까기 인형’은 주역으로 거듭나기 위해 한 번씩 거쳐야 하는 관문과 같은 작품. 김별은 이번 공연으로 국립발레단의 새로운 ‘별’로 우뚝 섰다.
김별은 지난 4일 강릉아트센터에서 공연한 ‘호두까기 인형’으로 주역 데뷔 신고식을 치렀다. 15일 첫 서울 공연을 마친 뒤 20일 한 차례 더 공연을 앞두고 있다. 최근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연습동에서 만난 김별은 “바쁜 지방 공연 스케줄로 내가 생각한 만큼 연습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긴장되고 두려웠지만, 막상 무대에서는 정신없이 공연을 마쳤다”며 “지금은 더 빨리 마리로 무대에 오르고 싶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김별은 국립발레단에서 코르 드 발레(corps de ballet, 발레 군무를 담당하는 무용수)를 맡고 있다. 2019년 예원학교를 거쳐 일반고를 졸업한 뒤 2021년 준단원으로 국립발레단에 입단, 이듬해 정단원이 됐다. 군무지만 지난 9월 ‘돈키호테’ 당진 공연에서 키트리 역으로 입단 3년 만에 첫 주역을 꿰찼다. ‘호두까기 인형’의 주역까지 맡으면서 국립발레단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무용수로 떠올랐다. 강수진 단장은 김별에게 “너는 특별하니까 무대를 즐겨라”라고 자주 말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의 주역 마리 역으로 데뷔하는 발레리나 김별의 연습 장면. (사진=국립발레단) |
이번 ‘호두까기 인형’은 주역이라는 무게감을 내려놓고 무대를 더 즐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별은 “‘돈키호테’에서 처음 주역을 맡았을 때는 어떻게든 동작을 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호두까기 인형’에서는 역할에 조금 더 녹아들어 무대를 즐기려고 한다”며 “마리의 순수함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별의 파트너는 솔리스트 하지석이다. 평소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하지석의 “즐겁게 하자”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김별은 “뭐가 됐든 즐겁게 하자는 말을 들은 뒤 마음이 편해졌다. 춤이 잘 안 되더라도 즐기면서 춤을 추려고 한다”며 웃었다. 이번 공연에서 김별은 마리 역 외에도 눈송이 요정, 인도 인형, 꽃의 왈츠 역으로도 출연한다. 거의 매회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오른다. 이 중 인도 인형도 이번이 데뷔다.
‘돈키호테’에 이어 ‘호두까기 인형’까지 주역을 경험한 김별은 앞으로 해보고 싶은 발레로 드라마 발레 작품을 꼽았다. ‘인어공주’, ‘까밀리아 레이디’, ‘로미오와 줄리엣’ 등이다. 김별은 “드라마 발레를 하게 되면 연기가 가장 큰 숙제이겠지만, 감정 표현에서 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많이 연구할 것”이라고 각오를 드러냈다.
김별의 남동생 김윤도 현재 국립발레단 코르 드 발레로 활동 중이다. 누나를 따라 발레를 배우면서 남매 모두 발레 무용수가 됐다. 김별은 “발레를 할 때가 가장 나답다”고 말했다. “아직 무대에서 완벽하게 만족한 적은 없어요. 여전히 많이 부족하죠. 그래서 더욱 춤을 즐기고 싶어요. 그래야 관객도 즐겁고 감동을 하니까요.”
지난 4일 강릉아트센터에서 연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에서 마리 역으로 데뷔한 발레리나 김별의 공연 장면. (사진=국립발레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