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한국인이지만 배경은 해외인 이야기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혼혈 멤버가 있는 하이브의 새 보이밴드 '코르티스'처럼 K팝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 '크로스 컬처'가 이뤄지는 거죠."
토니상 6관왕을 휩쓴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천휴 작가는 지난 13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문학주간 행사에서 "요즘 내 화두는 크로스 컬처'라며 이같이 말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통할 것 같은지를 묻는 한 20대 참석자의 질문을 듣고서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공동 개최한 '2025 대한민국 문학축제'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날 자리는 김현 시인이 사회를 맡아 박 작가의 예술관과 작품 활동 등을 주제로 진행됐다. 뮤지컬 업계에 발을 디디고자 하는 20대 청년을 비롯해 100여명이 참석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K뮤지컬에 대한 높은 열기를 증명했다.
한국에서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그는 뉴욕 지하철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활자 중독자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완독한 김애란 작가의 신작 '안녕이라 그랬어'를 언급하며 "예리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김 작가님처럼 나도 부지런히, 타협하지 않고 예리하게 세상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좋은 글을 읽으면 나는 이 작가와 비교해 지금 잘하고 있는지 직업병처럼 계속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술의 가장 큰 힘은 다른 사람의 사상과 철학, 감정을 엿보며 끊임없이 나를 반추하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뮤지컬 작가로 활동한 지 14년째. 무엇이 그에게 계속 쓸 힘을 줄까. 박 작가는 외로움과 궁금증을 꼽았다. "'나만 이렇게 외로운 거 아니지? 나만 이렇게 다른 사람과 진심으로 연결되고 싶은 거 아니지?' 하는 궁금증과 갈망이 제게는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해피엔딩'을 함께 만든 작곡가 윌 애런슨에 대한 깊은 우정도 드러냈다. 1970년대 유명 작사·작곡가 듀오인 할 데이비드와 버트 바카락을 언급한 그는 "둘은 평생 함께 일했는데 데이비드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제가 윌보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며 울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어 "재능있고 똑똑한 윌과 함께 정서를 합쳐 작업할 수 있는 동시대에 태어난 것을 커다란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뮤지컬 창작 시 지켜야 할 것'을 묻는 한 문예창작과 재학생의 질문에는 "'지금 흥행하고 있는 공연을 내가 똑같이 가져가야지'라는 생각을 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공연예술에 대한 본질을 고민하고 공연 제작의 역사를 알면 기존과는 다른 시선으로 창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에세이집을 집필하고 싶다는 마음도 내비쳤다. "더 늦기 전에 에세이집을 쓰고 싶어요. 필명으로 아무도 제가 쓴지 모를 정도로 되바라진 걸 쓰고 싶다가도 출판사 입장을 고려해 쉽게 써야 하나 고민하기도 합니다. 상업성과 끊임없이 줄다리기하는 게 창작자의 과정인 것 같아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죠."
허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