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앞바다가 영화의 파도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아시아 최대 영화축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17일 서른 번째 닻을 올리고 열흘간의 항해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영화제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BIFF는 17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열흘간 메인 상영관인 우동 영화의전당을 비롯한 부산 7개 극장, 31개 스크린에서 진행된다. 올해 공식 상영작은 지난해보다 17편 늘어난 241편(64개국)이다. ‘커뮤니티 비프’ 등 연계 프로그램에서 상영하는 작품까지 포함하면 전체 상영작은 328편이다. 이 중 영화제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월드 프리미어(세계 첫 공개) 작품만 90편에 달한다.
◇부산 상륙한 ‘역대급 라인업’
올해 BIFF에는 상반기 칸영화제, 하반기 베니스영화제에서 집중 조명되며 기대를 모은 작품이 대거 초청됐다. 영화제 출발을 알리는 개막작에는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를 선정해 아시아 프리미어로 선보인다. 박 감독을 제치고 베니스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짐 자무시 감독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러더’와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지안프랑코 로시 감독의 ‘구름 아래’도 상영작 리스트에 올랐다.
눈에 띄는 작품은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포함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이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으로, 여러 차례 체포와 수감 등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이란 사회의 권위주의적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동명의 일본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재일 한국인 이상일 감독이 연출한 ‘국보’도 부산에서 첫선을 보인다. 일본 전통극 가부키에 삶을 바친 한 남성의 일생을 그린 작품으로, 최근 일본 역대 실사영화 흥행 2위에 오르며 현지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봉준호부터 벨로키오까지 ‘존재감’
올해 BIFF 영화의전당을 찾는 영화인의 면면은 세계 유수 영화제에 밀리지 않을 만큼 묵직하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마르코 벨로키오가 BIFF를 통해 생애 첫 아시아 영화제 나들이에 나선다. 현대 누아르 장르의 교본으로 불리는 ‘히트’(1996) 등을 남긴 마이클 만은 BIFF ‘마스터 클래스’ 프로그램을 계기로 한국을 처음 방문하고, 할리우드에서 이름값 높은 기예르모 델 토로도 신작 ‘프랑켄슈타인’을 들고 처음으로 내한한다. BIFF를 통해 세계적인 감독으로 발돋움한 중국의 지아장커는 물론 봉준호 박찬욱 감독도 BIFF에 참석할 예정이다.
◇BIFF의 새로운 미래 ‘부산어워드’
30주년을 맞은 BIFF의 최대 화두는 경쟁영화제 전환이다. 그간 비경쟁(부분 경쟁) 체제를 유지한 BIFF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영화제로 도약하기 위해 올해부터 경쟁 부문을 신설하고 뛰어난 미학적 성취를 이룬 작품에 대상 감독상 등 5개 부문의 ‘부산어워드’를 시상하기로 했다. BIFF 관계자는 “아시아의 시선으로 아시아 영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경쟁 부문에는 14편(월드 프리미어 10편, 아시아 프리미어 4편)이 초청됐다. 중국과 일본 영화 시장에서 새로운 흐름을 이끄는 비간의 ‘광야시대’, 미야케 쇼의 ‘여행과 나날’이 눈에 띈다. 대만을 대표하는 배우 서기의 첫 연출작 ‘소녀’도 초청됐다. 지난해 칸과 미국 아카데미상(오스카상)을 동시 석권한 션 베이커가 프로듀서를 맡은 화제작 ‘왼손잡이 소녀’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 영화로는 활기와 도발로 가득찬 한창록의 데뷔작 ‘충충충’, 사회적 문제를 예리하게 관통하는 유재인의 데뷔작 ‘지우러 가는 길’, 임선애의 세 번째 장편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등이 수상을 놓고 경쟁한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