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올해 첫 연극 '만선'
30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공연
거센 풍랑에서 무리하게 고기 떼를 쫓다 아들을 잃은 어부가 소리친다. "고집 부리는 것이 아니다. 내 조부님이 만선(물고기 따위를 많이 잡아 어선에 가득 싣는 것)이 아니면 노 잡지 말라고 하셨어. 그물을 손에서 놓는 날에는 차라리 배를 가르고 말 것이여."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올해 첫 연극 '만선'(연출 심재찬)은 바다와 맞서는 어부의 결기와 비극을 그린다. 주인공 곰치(김명수)는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처럼 평생 바다에서 살며 고기잡이를 천직으로 여기는 인물이다. 남해 칠산 바다에 유례없이 많은 부서(보구치) 떼가 나타나고, 곰치는 밀린 빚을 갚고 그럴 듯한 배 한 척을 장만하기 위해 야심 차게 출항한다.
결국 바다에 패배하지만 존엄을 잃지 않은 산티아고 노인과 달리 곰치는 비참한 상황에 빠진다. 장성한 아들 도삼(황규환), 고명딸 슬슬이(강윤민지)의 애인 연철(성근창)이 바다에 수장되고, 아내 구포댁(정경순)은 미쳐 버린다. 가난 때문에 주막 주인 범쇠(박상종)에게 희롱 당하던 슬슬이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구포댁은 젖먹이 아들만은 어부로 키우지 않기 위해 각각 극단적 조치를 취한다.
'만선'의 인물들이 존엄성을 잃는 것은 바다가 아닌 인간들에게 핍박을 받기 때문이다. 선주 임제순(김재건)은 부서 떼가 출몰한 시기에 배를 빌려주지 않아 곰치의 피를 말리고, 범쇠는 오빠와 애인을 잃은 슬슬이에게 더 노골적으로 마수를 뻗친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만선'에서는 가장 극단적인 순간들에 물이 등장한다. 범쇠는 무대 왼편 구석에 마련된 바닷물에 빠져 슬슬이에게 응징을 당하고, 모든 비극을 겪은 곰치와 구포댁이 망연자실해 있을 때는 천둥·번개가 치며 장대비가 쏟아진다. 30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김형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