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분사 7곳, 통밀 시세 악용해 담합 … 관련 매출 5조6900억
식당 등서 55차례나 회합해
중력분 가격 최대 74% 폭등
보조금 받고서도 담합 지속
공정위, 가격 재결정 명령도
업계 "깊이 사과, 재발 막을것"
공정거래위원회가 빵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이른바 '빵플레이션'의 주범으로 지목된 제분업계 가격 담합 사건에 역대 최대 규모인 과징금 6710억4500만원을 부과했다. 또 공정위는 가격재결정 명령까지 내렸다. 담합에 대한 정부의 엄벌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물가 안정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지가 담긴 조치로 풀이된다.
20일 공정위는 7개 제분사가 2019~2025년 6년에 걸쳐 진행한 밀가루 담합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이 같은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담합행위 관련 기존 최고 과징금은 2010년 액화석유가스(LPG) 공급회사 6곳에 부과했던 6689억원이었다. 이번에 과징금을 부과받은 제분사는 사조동아원·대한제분·CJ제일제당·삼양사·대선제분·한탑·삼화제분이다. 지난 1월 공정위는 7개 제분사와 담합에 가담한 임직원 14명에 대한 고발도 완료했다.
6년간 이뤄진 담합 관련 매출액은 총 5조6900억원에 달했다. 부과 가능한 과징금 상한은 관련 매출액의 20%로, 일부 업체들이 조사에 협조하면서 과징금을 감경받았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제분사 간 경쟁이 격화하던 2019년 11월 대한제분과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등 시장 점유율 '빅3' 업체 대표자급 임원과 삼양사 임직원이 식당에서 만나 "경쟁을 자제하고 적정 가격을 유지하자"고 합의하면서 담합이 시작됐다. 이후 삼화제분과 대선제분, 한탑이 가담하면서 담합 범위를 키워갔다.
제분사들은 지난해 10월까지 총 24차례에 걸쳐 가격·물량 담합을 벌였다. 농심·팔도·풀무원 등 대형 수요처를 대상으로 밀가루 공급가격과 물량을 19차례나 담합했다.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을 대상으로도 5차례 담합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제분사들은 총 55차례에 걸쳐 대표자급·실무자급 회합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 시장점유율 88% 달해
이들은 원료인 원맥(통밀) 수입 시세에 따라 치밀하게 움직였다. 시세 상승기였던 2020~2022년에는 원가 부담을 판매가에 즉각 전가하기 위해 가격 인상폭과 시점을 사전에 합의했다. 반면 시세가 하락세로 돌아선 2023년 이후에는 인하 효과를 최소화하고자 대형 수요처에 대한 가격 인하폭과 적용 시기를 조율하며 고가격을 고수했다.
특히 정부가 국제 원맥 시세 상승기였던 2022년 하반기 이후 물가 안정을 위해 이들 제분사에 가격안정 지원 보조금 총 471억원을 지급했음에도 담합은 계속된 것으로 조사됐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브리핑에서 "보조금 몰수 등 사후 조치는 (담당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필요하다면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결과 제분사별로 밀가루(중력분) 판매가격이 담합 시작 때와 대비해 최대 74%까지 치솟았다. 2019년 12월 제분사별로 ㎏당 400~500원대에 머물던 밀가루 가격은 2022년 9월 기준 885원(대한제분)까지 올랐다. 공정위는 "제분사들이 담합을 통해 경쟁 없이 안정적으로 공급 물량을 확보하고 밀가루 생산량 기준 각 업체의 시장점유율을 대체로 유지할 수 있었다"며 "담합에 가담한 상위 3개사와 하위 3개사 모두 영업이익률이 크게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이들 제분사는 국내 기업 간 거래(B2B) 밀가루 판매 시장에서 총 87.7%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과점 사업자들이다.
◆ 가격재결정 놓고선 이견
정부는 특히 생활밀접 품목 담합에 대한 제재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담합 등 불공정거래가 만연한 실태를 두고 "온 동네를 파보면 전부 다 더러우니 다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공정위가 전격 도입한 '가격재결정 명령'을 놓고는 시선이 엇갈린다. 학계와 업계 일각에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돼야 할 가격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칙에 반하며 장기적으로 가격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번 명령에 따라 제분사들은 담합 이전의 경쟁 질서를 반영한 가격안을 수립해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공정위는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후생 증진 효과가 명확한 만큼 향후에도 가격재결정 명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업계는 전반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개선 의지를 밝히는 분위기다. CJ제일제당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경쟁사와 접촉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제분협회를 탈퇴했다"고 밝혔다. 앞서 CJ제일제당은 지난 1월 업소용 밀가루 가격을 4% 인하하고 2월에는 업소용과 소비자용 전 제품 가격을 최대 6% 내린 바 있다. 삼양사는 "일부 B2B 영업 관행과 내부 관리체계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가격 정책이나 영업활동 전반에 대한 내부 기준과 의사결정 절차를 전면 재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곽은산 기자 / 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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