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20만원을 찍을 것인가?”
올여름 기대작으로 꼽히는 뮤지컬 ‘위키드’와 ‘위대한 개츠비’를 두고 공연업계에서는 이런 말이 오갔다. 결과적으로 두 작품 모두 VIP석 가격이 19만원으로 결정됐지만, ‘20만원 시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티켓플레이션(티켓과 인플레이션을 합친 신조어)을 완화하기 위해선 장기 공연과 가격 탄력제 도입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티켓값 결정 눈치싸움
14일 공연업계에 따르면 오는 7월 내한 공연하는 뮤지컬 ‘위키드’와 8월 개막하는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 진출작 ‘위대한 개츠비’의 VIP석 가격이 각각 19만원으로 책정됐다. VIP석 가격이 처음으로 20만원을 넘길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19만원으로 결정됐다.
‘위키드’ 제작사 에스앤코와 ‘위대한 개츠비’ 제작사 오디컴퍼니는 막대한 제작비를 고려해 내부적으로 20만원 이상 가격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비자 저항, 20만원 선을 끊는 첫 주자가 될 수 있다는 부담 등을 고려해 눈치싸움 끝에 19만원으로 조율했다. 업계에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프로즌(겨울왕국)’이 국내 초연하는 내년부터 ‘20만원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뮤지컬, 연극 등 공연 티켓 가격은 거침없이 오르고 있다. 2022년 말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VIP석(16만원)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15만원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2023년에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19만원(VIP석)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공연 중인 뮤지컬 ‘알라딘’도 VIP석은 19만원이다. 연극은 배우 이영애가 나오는 ‘헤다 가블러’ 등 톱스타 출연작을 중심으로 이미 10만원을 넘겼다.
◇ “장기 공연 환경 마련해야”
국내 공연 제작사는 치솟은 제작비와 소비자 눈높이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한 작품에 100명 이상(대극장 뮤지컬 기준)을 투입하는 스태프의 인건비, 흥행을 좌우하는 배우 출연료, 무대 제작비 등 각종 비용은 빠짐없이 늘었다. 해외 원작을 들여오는 라이선스 공연은 환율 상승 여파로 달러로 지급하는 로열티 선급 비용도 불어났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현재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하는 것과 별개로 서울 오리지널 프로덕션으로 무대를 새로 제작했다”며 “무대를 섬세하게 구현하기 위해 음향, 조명, LED(발광다이오드) 패널 등 보이지 않는 곳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티켓값을 무작정 올리기 어렵다. 소비자 불매 운동이나 재관람 감소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는 10년 전 대비 21.2% 상승했지만 공연예술 관람료는 15.4% 올랐다.
업계에서는 티켓값을 탄력적으로 매길 수 있도록 장기 공연을 올릴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부분 국내 뮤지컬은 2~3개월 안에 막을 내린다. 신 대표는 “티켓 가격을 계속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도록 최소 4개월 이상, 나아가 오픈런(기간을 정하지 않고 공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연 기간이 늘어나고 공연장도 확충된다면 외국처럼 좌석에 따라 가격 등급을 세분화할 수 있고 다양한 할인 제도 도입도 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