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T위즈 대 LG 트윈스의 KBO리그 정규시즌 맞대결. 이강철 KT위즈 감독은 경기 전 “올해는 LG트윈스만 만나면 잘 안 풀리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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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루 베이스에서 물을 마시는 KT위즈 유준규. 사진=KT위즈 |
그럴 만도 했다. 경기 전까지 KT는 LG를 상대로 6연패를 기록 중이었다. 올 시즌 상대전적도 4승 8패로 크게 뒤지고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4일에는 수원 홈에서 LG에게 6-3으로 앞서다 문성주에게 역전 만루홈런을 맞고 8-10 역전패를 당했다. 그 트라우마가 계속 남아있었다.
하지만 KT는 이날 잠실에서 LG전 징크스를 깼다. 0-4로 끌려가던 경기를 6-4로 뒤집은 것. 불과 일주일 만에 LG에게 똑같이 역전승으로 설욕했다.
역전승 주역은 8회초 2타점 결승 3루타를 때린 권동진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승리 발판을 놓은 선수가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2002년생 외야수 유준규였다.
유준규는 7회초 대주자로 교체 투입됐다. 강백호의 적시타 때 홈을 밟으며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이어진 8회초에는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LG 필승조 김진성을 상대로 무려 11구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낸 것.
김진성의 주무기인 포크볼을 잇따라 커트해내면서 파울을 5개나 얻어냈다. 김진성은 이내 얼굴은 굳어졌고 결국 11개나 공을 던진 끝에 볼넷을 허용했다.
김진성은 1루에 나간 유준규를 계속 의식했다. 1루에 견제구를 7개나 던졌다. 2루 도루를 위해 리드폭이 컸던 유준규는 그때마다 1루 베이스로 몸을 던졌다.
다음 타자 황재균의 안타로 2루에 진루했을 때 유준규는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후 코칭스태프가 더그아웃에서 뛰어나왔다. 손에는 물이 들려져 있었다. 경기 도중 주자가 물을 마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만큼 체력을 다 쏟아부었던 것이다.
유준규의 투지와 집중력은 결실을 맺었다. 권동진의 3루타가 터지면서 홈을 밟았고 결승 득점 주인공이 됐다. KT가 길었던 LG전 징크스를 깨는 순간이었다.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2021년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로 KT에 지명된 유준규는 그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022년 1군에서 7경기 출전한 뒤 군에 입대했다. 구미에 있는 50사단에서 1년 6개월 동안 현역으로 복무한 뒤 올해 2월 제대 후 팀에 복귀했다. 제대하자마자 이강철 감독의 눈에 들었다. 호주 전지훈련에서 ‘스페셜조(야간훈련조)’에 포함돼 별도로 특별훈련을 하기도 했다.
올 시즌 전체로 보면 활약이 두드러진 것은 아니었다. 이날 경기 포함 27경기에 출전했지만, 타율은 1할도 안 되는 6푼7리였다. 출전한 경기는 주로 대주자 또는 대수비였다.
하지만 유준규는 자신에게 찾아온 흔치 않은 기회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낮은 타율에도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팀의 승리를 이끌며 스스로 존재감을 증명했다. 단순히 기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끈기는 팀을 살리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유준규는 2루에서 물을 마신 상황을 돌아보며 “정말 물이 필요했을 뿐인데 심판님이 상태를 물어보더라”고 말한 뒤 쑥스러워했다.
이어 “안타보다 출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삼진이 많아 콘택트에 더 집중했다”며 “군 제대 후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었는데 오늘 득점이 큰 힘이 될 것 같다. 팀이 이겨서 가장 기쁘다”고 말한 뒤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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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승리를 이끈 뒤 더그아웃에서 인터뷰를 하는 KT위즈 유준규. 사진=이석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