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옌 지음, 문현선 옮김, 윌북 펴냄
‘1분당 100원’ 벌어야 하는
인간 참극의 현장에 대한 기록
땀으로 쓴 글은 작가를 배반하지 않는다. 후안옌의 책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는 이를 증명해낸다. 출간 즉시 중국에서 10만건의 리뷰 기사와 독자 서평을 받은 책, 누적 판매 부수 200만부의 이 책이 한국에도 출간됐다. 이국땅의 택배기사가 쓴 글에 사람들은 왜 그토록 열광했을까.
1979년 출생의 저자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가난 때문이었다. 20년간 생계를 위해 경험한 직업만 19개. 호텔 웨이터, 주유소 직원, 패스트푸드 배달원, 자전거 가게 점원, 청과물 시장의 아이스크림 판매원 등등. 하지만 그는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으로 밤마다 책상에 앉았고, 이 책은 오직 그만이 쓸 수 있는 노동의 기록으로 남았다.
일화 하나. 광저우 물류사 D사의 허브센터에서 일하던 저자의 눈엔 ‘일개미’가 가득했다. 축구장 9개 크기의 택배 분류장에선 누군가와 말을 섞는 일조차 ‘사치’일 정도로 숨이 가빴다. “3리터짜리 물병을 매일 한 병씩 비웠지만 소변을 보진 않았다.” 벌컥벌컥 들이켠 물이 땀으로 죄다 배출된 것. 동료는 90kg이던 체중이 65kg로 줄었으니, 가히 ‘인간 참극’이 아닐 수 없었다.
일화 둘. 베이징 택배사 S사에 입사해 삼륜차를 몰고 현장에 가려는데, 주임은 고객에게 ‘쓰레기를 대신 버려드릴까요?’라고 물으라 했다. 별점 5점을 부탁하라는 지시는 덤. S사는 “택배계의 친절왕”으로 유명했다. 저자는 쓴다. “그 말이 택배기사들이 좋은 평판을 듣기 위해 기를 써야 한다는 뜻이란 건 미처 몰랐다.”
택배기사로서 저자의 목표는 ‘1분당 0.5위안(약 100원)’이었다. 일당은 270위안, 9시간을 배달하면 시간당 30위안이니 분당 0.5위안은 벌어야 손해가 아니었다. 덮밥을 사 먹으면 기다리고 먹는 20분의 가치가 10위안, 거기에 덮밥값을 합치면 25위안이 들었다. 그래서 저자는 점심을 건너뛰었고, 물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는 고백도 덧붙인다.
이 책의 성취는, 노동과 자유의 상관관계를 고민하는 대목에서다. 대체 무엇이 자신이, 또 옆자리의 동료가 현재를 ‘희생’하게 만들었느냐고 그는 쓴다. 그는 이런 결론을 낸다. “자유란 ‘무엇을 누리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의식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진리의 추구가 진리의 소유보다 소중하다는 도리스 레싱의 말까지 인용하면서. 그는 노동 현장의 한복판에서 스스로 현자가 됐다.
저자가 유명해진 계기는 회사 폐업에 코로나19가 겹쳐 실직한 뒤 인터넷에 올린 글 때문이었다. 직장 19곳을 옮기면서도, 저자는 글을 쓰면서 자유를 추구했다. 무수한 직업을 옮겼지만 그가 지키고자 했던 정체성, 즉 그가 ‘작가’란 사실은 변함 없었으니 그는 성공한 인간이다.
20여 개국 출간이 확정된 책, 숭고한 땀을 이해하는 마음엔 국경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