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QNX, 운영체제로 승승장구
“고장내려면 총으로 쏴야” 안정성
차량용SW 이어 의료기기분야 진출
블렉베리 매출 절반 책임지는 핵심
주가 반등했지만 전성기대비 -96%
스마트폰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블랙베리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현지시간) 과거 물리적 쿼티(QWERTY) 키보드와 ‘벽돌 깨기’ 게임으로 전 세계 비즈니스맨들의 필수품으로 꼽혔던 이 회사가 이제 더 이상 스마트폰을 만들지 않지만 자동차와 병원 기기에 숨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중심에는 블랙베리의 숨겨진 무기이자 자회사인 ‘QNX’가 있다. QNX 사업부의 사장인 존 월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직장을 소개할 때마다 흥미로운 반응을 마주한다. QNX라고 하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블랙베리가 소유한 회사라고 부연 설명을 하면 십중팔구 “블랙베리가 아직도 살아있어?”라는 놀라움 섞인 반문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오늘날 블랙베리의 가장 수익성 높은 제품은 전 세계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2억 7500만 대의 자동차에 탑재된 ‘숨겨진 소프트웨어’다. 존 월은 QNX의 엔지니어들을 우리가 일상에서 늘 필요로 하지만 결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배관공이나 전기공에 비유한다.
집을 지탱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배관과 전선이듯, 최신 자동차의 안전 기능을 뒷받침하는 튼튼한 기반이 바로 QNX 운영체제다. 충돌 경고, 사각지대 알림,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보행자 감지, 차선 이탈 방지 등 운전자의 생명과 직결된 모든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 이 소프트웨어 위에서 구동된다.
자동차가 사실상 ‘바퀴 달린 컴퓨터’로 진화하면서 QNX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이 소프트웨어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유는 단 하나, ‘절대 고장 나지 않도록’ 설계된 단순하고 즉각적인 실시간 운영체제(RTOS)이기 때문이다.
경제지 포춘은 이 시스템에 대해 “이 소프트웨어를 오작동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구동 중인 컴퓨터에 총알을 쏘는 것뿐”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탄’에 가까운 신뢰성을 바탕으로 QNX는 자동차를 넘어 안전과 정밀도가 최우선인 산업 현장과 수술실까지 진출했다. 수술용 로봇과 수십 가지의 중요 의료 기기 내부에도 QNX 기술이 이식되어 있다. 환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블랙베리의 시스템에 생명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이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는 한때 시장에서 외면받았던 블랙베리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과거 그룹 내에서 변방 취급을 받던 QNX 사업부는 이제 전체 매출의 절반을 책임지는 핵심으로 부상했다.
스마트폰 전성기 시절 이후 처음으로 4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최근의 긍정적인 실적 발표 이후 주가는 단숨에 50%나 급등했다. 물론 전성기였던 2008년 시가총액이 830억 달러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현재 기업 가치는 30억 달러 수준으로 최고점 대비 여전히 96% 하락한 상태이긴 하다. 회사 CEO는 실적 발표에서 “블랙베리의 이야기는 이제 명백한 ‘성장 스토리’다”라고 선언했다.
이 극적인 반전의 계기는 2014년에 찾아왔다. 1980년에 설립된 QNX는 2010년 블랙베리에 인수되었다. 당시 많은 엔지니어들이 블랙베리 스마트폰 모바일 운영체제를 구하기 위해 차출되었지만, 존 월과 그의 팀은 묵묵히 남아 자동차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진했다.
철저한 ‘무관심’ 속에 방치된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그들이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곧이어 구글이 자체 안드로이드 시스템을 발표하고 애플이 QNX 엔지니어들을 스카우트하며 거대 빅테크들의 위협이 시작되었다. 다시 한번 블랙베리가 거인들에게 짓밟힐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때 존 월은 실리콘밸리로 넘어가 오랜 고객이었던 아우디의 엔지니어링 최고 책임자를 만났다. 맥주를 마시며 나눈 대화에서 아우디 측은 인포테인먼트 화면은 구글로 넘어가지만, 차세대 자동차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고도의 안전성 소프트웨어가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만남은 존 월의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맥주 타임이 되었다. 구글, 애플과 화면(디스플레이)을 지배하려는 무의미한 경쟁을 벌이는 대신, 보닛 아래 숨겨진 자동차의 핵심 뇌를 장악하기로 결단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차선 유지 기능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아래에서 구동되는 운영체제가 무엇인지, 그것을 블랙베리가 만들었는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한때 잊힐 뻔했던 기업은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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