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암호명 A의 실화
조선 최고 사업가, 독립운동 선택
우리가 몰랐던 냅코프로젝트
OSS 첩보작전의 극적 전개
실력파 배우와 창작진 참여
뮤지컬로 부활한 역사적 순간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이유...누가 나에게 답해줄 수 있나.”
배우 유준상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애엄마’인 독립투사를 바라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하는 말이다. 평범한 우리들이 배우 유준상에 감정이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그가 어떻게 자신의 목숨을 걸고 냅코 프로젝트에서 ‘암호명 A’로 불렸던 독립운동가가 될 수 있었는지 뮤지컬은 말하고 있다.
지난 19일 개막한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는 독립운동가이자 유한양행 설립자인 유일한(1895∼1971) 박사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주인공 유일형이 독립운동을 후원하던 사업가에서 OSS 스파이가 돼 조선으로 들어와 제약회사를 설립하고, 이후 냅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속도감 있고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유일형 역할을 맡은 배우 유준상은 실제로 3·1절에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상해임시정부로 다녀올 정도로 평소에도 애국심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딱 맞는 옷’을 입은 그는 진심 가득한 연기를 선보이며 작품을 묵직하게 이끌어간다. 이런 그가 무릎꿇고 절규하는 대목이 있다.
유일형이 조선총독부에 건넨 마약성 진통제가 일제의 ‘카미카제’라는 자살특공대 소년병에게 쓰인다. 마약성 진통제를 먹고 전투기에 오른 소년병들은 자폭하기 위해 무대 한켠에서 뛰어내린다. 무대는 핏빛으로 물들고 쿵쾅쿵쾅 음악이 귀를 때린다.
이에 유일형은 “죽음의 두려움을 빼앗긴 채로 돌아올 수 없는 전쟁의 바다에 꽃다운 청춘을 던져버려”라고 노래 부른다. 관객들은 유일형과 함께 가슴 아파한다.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다보니 총과 칼의 무술 장면과 고문하는 장면이 여러차례 등장한다. 관객들은 연신 눈물을 훔친다.
제목 ‘스윙 데이즈’ 답게 무대 한 가운데 그네가 놓인 장면은 압권이다. 아역 배우 3명이 서로 사이좋게 그네를 끌어주고 밀어준다. 그러면서 일제 강점기 시대 친구 3명(유일형, 황만용, 야스오)의 유년시절과 현재가 교차된다. 아역 배우 3명의 고음역대와 성년 배우 3명의 중저음역대가 조화를 이룬다.
창작 초연인 이 뮤지컬은 뮤지컬의 정석을 보여준다. 주인공을 받쳐주는 앙상블 및 스윙이 총 22명에 달한다. 그들이 일제 시대 의상을 입고 다 같이 재즈댄스를 추니 그 시대로 빠져든다.
360도 돌아가는 미디어아트를 활용해 무대공간을 다양하게 쪼개고 배경을 잔인하게 혹은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고전적인 계단, 소품을 활용해 다양하게 무대를 전환했다.
이 작품은 3년여에 걸친 포로덕션 작업을 통해 완성됐다. 창작진의 면면도 화려했다. 영화 ‘실미도’로 천만 영화 관객의 시대를 연 김희재 작가가 처음으로 뮤지컬을 집필해 화제를 모았다. 또 그래미어워즈와 에미상 수상은 물론 ‘데스노트’ ‘웃는 남자’ 등의 흥행 뮤지컬 편곡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친숙한 제이슨 하울랜드가 작곡가로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여기에 김태형 연출과 김문정 음악감독이 작품을 이끌어 간다.
실력파 배우들이 캐스팅됐다. 유일형 역에는 유준상, 신성록, 민우혁이 캐스팅되었다. 야스오 역에는 고훈정, 이창용, 김건우가 출연하고 황만용 역에는 정상훈, 하도권, 김승용이 출연한다.
이 작품이 차용한 냅코 프로젝트는 1945년 미국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첩보국(OSS)이 주도한 비밀 첩보작전이다. 최정예 조선인 요원 19명으로 팀을 꾸려 일제의 기밀을 수집하고 거점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들은 모두 A,B,C,D 같이 알파벳 암호명으로 불렀고 그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그들이 모두 죽은 후였다. 8월 18일 작전 수행을 3일 앞둔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고 조선이 광복을 맞으면서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내년 2월 9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