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식 조명하는 모나 하툼
첫 한국 개인전
약장에 든 수류탄·가시 달린 휠체어
머리카락으로 만든 목걸이 등
익숙함에 대한 새로운 시각 제시
1995년 프랑스 보르도의 까르띠에 매장 앞, 사람들이 웅성이며 모였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쇼윈도 너머. 반짝이는 보석이 있어야 할 자리에 푸석푸석한 털뭉치들이 마치 고급 주얼리인양 전시돼 있다.
이 주얼리의 정체는 아티스트 모나 하툼(Mona Hatoum)의 작품 ‘Hair necklace’. 털뭉치를 알알이 엮어 만든 목걸이로, 독특한 재료를 사용했다. 바로 작가의 머리카락이다. 하툼은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수 개월간 모아 작품을 완성했다. 천연 곱슬머리 덕에 어렵지 않게 구슬 형태로 완성할 수 있었다.
29년이 흐른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이 목걸이의 실버 에디션이 공개됐다. 세월이 흘러 희끗해진 작가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Hair Necklac(silver)’다.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에서 열린 하툼의 개인전에서 이 작품을 포함해 총 20여 점의 대표작과 신작이 공개됐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영국, 중국, 일본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온 작가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는 개인전이다. 1999년작부터 가장 최근에 제작한 조각, 설치물, 드로잉 작업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작가의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익숙한 것의 배신, 낯설게 보기의 예술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모나 하툼은 모순된 요소를 한데 엮어 예상치 못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바닥에 떨어진 보잘것 없는 머리카락으로 하이패션 주얼리를 만드는가 하면,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단단해야 할 지팡이는 고무로 만들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벽에 기댄 채 전시한다. 아픈 환자의 이동을 돕는 휠체어 손잡이에 가시를 붙여 보호와 위협이 공존하는 긴장을 형상화한다.
하툼은 이처럼 친숙하고 일상적인 물건을 이질적으로 변형한다. 기존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개념을 낯설게 비틀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다. 작가는 주로 사회·정치적 통제 시스템 문제나 이주, 소외, 이질감 등을 주제로 한다. 이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팔레스타인 부모에게 태어난 작가의 배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의 가족은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인해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하툼은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받지 못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고, 1975년에는 영국 런던을 방문했다가 레바논 내전이 발발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로 인해 지속해서 이방인으로서의 감정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들로 경험하며 쌓여 온 정서는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관습을 의심하고 경계를 허물다
“저는 항상 반항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어요. 저를 어떤 틀에 맞추려고 할수록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죠.”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관습, 형식, 규율, 전통, 권위 등의 개념은 작가의 정체성과는 나란히 걸을 수 없는 길 위에 있는 듯하다.
하툼은 작품에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관객이 직접 경험하고 해석하게끔 유도한다. 전시장 곳곳에서 보이는 작품들은 상충되는 개념들이 한데 모여 예상치 못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약이 들어있어야 할 약장에는 형형색색의 수류탄이 들어있고,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병원에서 주로 사용하는 칸막이에는 부드러운 천 대신 금속 철조망을 붙여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카이로의 한 공예가에게 제작을 의뢰한 작품 ‘미스바(Misbah, 2006–7)’만은 예외다. 아랍어로 ‘불을 밝히는 등’을 의미하는 미스바는 분쟁의 개념을 매우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군인의 실루엣이 새겨져 있는 이 황동 조명을 작동시키면 총을 든 병사들의 그림자가 방 안을 가득 메운다. 원을 그리며 새겨진 군인의 모습 때문에 조명이 꺼지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서로의 등에 총을 겨눈 채 진격하는 모습이다. 이는 권력과 갈등의 구조를 암시하는 동시에 전쟁의 반복성과 그로 인한 상처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진다. 기대했던 익숙함에 배신당했을 때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사물과 멀어지기보다는 깊은 사유와 성찰의 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전시는 4월 12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