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0시간 넘게 산불과 전쟁… 화마에 잃은 선배 조문도 못 가”

2 days ago 8

[최악 산불 진화 국면]
11년 경력 영덕 진화대장 김영수씨
“50년 살던 집-처가도 모두 불타
슬퍼할 겨를도 없어” 눈시울 붉혀

27일 밤 경북 영덕군 산불전문예방진화대장 김영수 씨가 대기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김 씨는 이날 14시간 30분 동안 산불 진화 작업을 벌였다. 
영덕=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27일 밤 경북 영덕군 산불전문예방진화대장 김영수 씨가 대기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김 씨는 이날 14시간 30분 동안 산불 진화 작업을 벌였다. 영덕=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나만 쓰는 산림이 아니잖아. 내 자식, 내 후손들도 쓸 산림인데….”

27일 오후 9시경 경북 영덕군 영덕문화체육센터 인근 산불전문예방진화대 대기실. 진화대장 김영수 씨(56)가 “내가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지켜야지”라며 이렇게 말했다. 김 대장은 이날 하루에만 14시간 30분 동안 화마(火魔)와 사투를 벌였다. 체력만큼은 자신 있었지만 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녹초가 된 그는 의자에 철퍼덕 기댄 채 한숨을 돌렸다.

21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돼 8일째 5개 시군을 앗아간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 김 대장은 매일 10시간 넘게 전쟁을 벌였다. 경북 지역 주불이 꺼진 28일에도 그는 오전 6시부터 약 12시간을 연기를 헤쳐가며 산불과 싸웠다. 잠긴 목소리로 연신 기침을 내뱉던 김 대장은 진화 소식이 들려오자 “대원들과 함께 고군분투한 결과인 것 같아 반갑다”며 그제야 미소를 보였다. 김 대장의 양손은 검게 그을린 화상 자국과 나무에 긁힌 듯한 흉터가 가득했다.

김 대장은 이번 산불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무섭게 확산하던 화마는 김 씨의 50년 보금자리와 처가까지 앗아갔다. 그는 대기실에서 쪽잠을 자며 생활하고 있다. 화재 당시 신발 두 켤레만 겨우 챙겨 나와 김 대장과 새우잠을 자며 불을 끄러 다니는 대원들도 상당수다.

김 대장은 동료를 잃는 아픔도 겪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에서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된 신모 씨(69)는 김 대장이 평소 형님처럼 따랐던 대원이었다. 신 씨가 사망한 25일에도 둘은 함께 의성 산불 현장으로 가 불을 끄고 왔다고 한다. 김 대장은 “형님과 ‘우리 살아 돌아왔으니 이제 영덕 (화재 진압)에 매진하자’고 말했었다. 서로 악수하며 헤어졌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대장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화재 진압을 하느라 조문도 못 갔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 대장이 진화대원이 된 지는 11년째. 마라톤 선수 출신인 그는 사업에 실패한 뒤 막노동일을 하다가 이 일을 시작했다. 생전 처음 겪는 직업병도 생겼다.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타다닥’거리며 나뭇가지가 타는 환청과 빨간색만 보면 흠칫하는 습관이다. 일을 관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2022년 2월 영덕 산불과 같은 해 3월 울진·삼척 산불을 연이어 경험했던 순간이다. 김 대장은 “너무 힘들어서 관두고 싶었는데 ‘산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날 일으켜 세웠다”며 “더 이상 불타지 않는 나무를 보는 그 희열 하나가 내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산불로 민가, 논밭 등 경북 지역 전체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잔불마저 완전히 꺼질 때까지 산을 계속 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덕=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영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