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국정자원 이중화'…시스템 구축 예산 배정 겨우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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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10.02 10:37 수정2025.10.02 10:55

지난달 27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현장에서 소방당국 관계자들이 소실된 리튬이온배터리에 대한 반출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7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현장에서 소방당국 관계자들이 소실된 리튬이온배터리에 대한 반출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촉발된 전산망 마비 사태의 배경으로 ‘이중화’ 미비가 지목되는 가운데 예산 편성의 한계와 지연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재해복구시스템(DR) 구축을 공언했지만 올해 DR 예산은 30억 원(전체 5559억 원의 0.5%)에 그친 데다 즉시가동(액티브-액티브) 예산은 24억 원 수준이다. 2일 오전 9시 기준 복구된 시스템은 110개로 전체 647개 대비 복구율 17%에 머물러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DR 30억·액티브-액티브 24억…‘0.5%의 현실’

2일 행정안전부와 국정자원에 따르면 국정자원의 2025년 예산안은 5559억 원으로 전년(5184억 원)보다 375억 원(7.2%) 늘었다. 노후 네트워크 장비 교체(1096억 원, 전년 대비 30% 증액)와 장애 컨트롤타워 강화(60억 원) 등이 포함됐고, 지난해 ‘행정 전산망 장애’ 재발 방지 대책에 따라 DR 구축 예산 30억 원이 신규 반영됐다.

현재 배정된 DR 예산은 전체의 0.5%에 불과하다. 장애 발생 즉시 서비스를 이어받는 액티브-액티브 방식에 배정된 금액은 24억 원에 머문다. 액티브-액티브는 두 센터가 동시에 실시간 데이터를 주고받아 한쪽 장애 시 무중단 전환이 가능한 구조다. 정부가 “1·2등급 시스템에 단계적 적용”을 약속했던 핵심 축이다.

논란의 불씨는 소관 부처의 예산 가이드라인에서 커졌다. 행안부는 지난해 4월 각 부처에 ‘1·2등급 DR 구축 투자 금지’ 지침을 내려 시범 사업 후 2026년부터 본격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공유했다. 이용석 행안부 디지털정부혁신실장은 “잘못된 방향 투자로 비용이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 시범 후 모델 확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지만, “사태의 중대성에 비해 대응이 늦었다”는 역풍을 맞았다.

예비 센터 확충의 상징인 공주센터 예산도 뼈아프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예산 검토에 따르면 공주센터 신축 예산은 지난해 251억 원에서 올해 16억 원으로 235억 원이 대폭 삭감됐다. ‘대전-공주 이중화’ 네트워크 구축 예산 역시 요구액 75억 6200만 원 중 29억 5500만 원만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재부는 “행안부가 축소 요청한 결과”라고 해명했지만 전날 국회에서는 “국가망 관리 주체인 행안부가 범정부 대책을 내놓고도 안일했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행안부 장관 "내년도 예산 충분하지 않아"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내년도 이중화 예산이 충분치 않다”며 “국회에서 증액해주면 기획예산 당국과 협의하고, 부족하면 예비비라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장관은 또 “대전센터 1등급 30여 개 시스템을 액티브-액티브로 구축하면 약 7000억 원, 광주까지 포함하면 1조 원 이상”이 들 것이라고 비용 추정치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액티브-스탠바이(평시 단일센터, 비상시 전환)라도 신속히 구축해 복구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현실론도 힘을 얻고 있다.

행안부는 중단된 시스템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일 오전 6시 기준 110개 시스템이 재가동돼 ‘119안전신고’ ‘국가기록포털’ ‘정부24’ 등 일부 대민 서비스가 정상화됐다. 정부는 국민신문고 중단에 따른 불편을 덜기 위해 시·군·구 ‘새올’ 온라인 상담 창구를 복원했고, 복구 현황도 네이버·카카오를 통해 안내 중이다.

김민재 중대본 1차장과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은 복구 방안을 논의한 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인력을 즉시 투입했다. 불길이 번진 5층 전산실은 서버 분해·청소·재조립을 병행해 이달 5일까지 분진 제거를 끝내고, 손상된 전원장치도 11일까지 복구한다. 화재 피해를 입은 96개 시스템은 NHN클라우드가 대구센터로 이관할 예정이다.

전문가들 "매뉴얼대로 운영됐는지 조사 불가피"

전문가들은 '관리·예산·매뉴얼' 3박자 개편을 주문한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2022년 카카오 데이터센터 사태 때 정부가 ‘전소해도 3시간 내 원상복구 가능’이라던 약속이 이번에 지켜지지 않았다. 일부 신규 데이터는 백업 미비로 영구 소실된 정황도 있다”며 “데이터 이중화는 정보보호의 기본인데 매뉴얼대로 운영됐는지, 있었다면 왜 어겼는지 범정부 차원의 면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리튬이온 배터리 운반·교체 작업 매뉴얼이 최신 위험 특성을 반영했는지 의문”이라며 “노후 배터리 ‘교체 권고’를 실질 의무처럼 받아들이는 문화와 예산 체계가 필요하다. 복합재난 시대에 맞춘 예산 배분의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권용훈/김영리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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