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만 해도 식품업체는 내수 기업으로 분류됐다. 국가별로 문화와 유통망이 너무 달라 해외 진출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한류와 글로벌 SNS 플랫폼 발달로 지역 간 경계가 흐려지자 K푸드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가공식품 수출액의 연평균 증가율은 10.6%에 달했다. 최근 K푸드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수출산업으로 거듭나자 K콘텐츠가 아니라 제품 경쟁력, K푸드테크가 근본적인 배경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기술력을 기반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고품질 제품을 세계시장에 선보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美·日 수출 24%, 中 26% 늘어
25일 대체 데이터 플랫폼 한경에이셀(Aicel)에서 제공하는 한국무역통계에 따르면 한국 가공식품의 4월 미국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4.3% 늘어난 9707만달러였다. 1~4월 누적 수출액은 3억3121만달러로 전체 수출의 22.7%를 차지했다. 미국 수출 비중은 2022년 17.8%로 중국(17.77%)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선 뒤 줄곧 높아졌다. 같은 기간 한국 가공식품의 중국 수출액도 25.9% 늘어난 7178만달러를 기록했다. 일본 수출액은 4418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4.1% 증가했다.
품목별로 라면이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 라면의 지난달 미국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2.7% 급증한 2532만달러를 기록했다. 중국 수출액은 가장 많은 2740만달러였다. 전년 동기보다 25.7% 늘었다. 일본 수출액은 777만달러(37.7%), 말레이시아도 637만달러(63.7%)에 달했다. 중동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라면 수출액은 199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대비 177.3% 급증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과자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미국 수출액이 144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6% 늘었다. 중국과 일본이 각각 898만달러(67.5%), 636만달러(19.2%)로 뒤를 이었다.
◇글로벌 특허 출원 ‘세계 5위’
식품기업들이 ‘내수 기업’ 딱지를 떼고 수출 기업으로 변신하게 된 배경엔 K푸드테크가 있다. 특허청과 국제 특허 출원을 관장하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5년(2020~2024년)간 식품 분야 특허 출원 국내 상위 10개 기업의 출원 수 합계는 1171개에 이른다. 가장 많은 특허를 출원한 기업은 CJ제일제당(340건)이다. 이어 대상(90개), 풀무원(74개), 삼양(68개) 순이다. CJ제일제당은 국내 471개, 글로벌 905개의 식품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기준으론 5년간 세계 5위 수준으로 특허를 많이 냈다.
레시피 공개를 꺼려 특허 출원을 하지 않는 식품업체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연구개발 투자 노력은 더 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라면만 하더라도 분말 수프가 어떻게 향을 유지하는지에 대한 기술, 건더기수프 보존성을 높이는 기술, 국내외 소비자 맞춤형 소스 개발 기술 등이 집약돼 있다. CJ제일제당의 만두와 즉석밥에는 100여 개 특허 기술이 적용된다. 오리온 초코파이가 러시아의 혹한부터 인도의 폭염까지 다양한 기후 환경에서 방부제를 쓰지 않고 6개월 이상 맛을 유지하는 비결에도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찾아낸 수분 함량의 비밀이 있다. 연 1조원 규모로 성장한 김 수출 시장 뒤엔 동원이 양반김에 개발, 적용한 ‘들기름이 함유된 조미김’ 관련 특허 기술이 숨어 있다. 1년 이상 김을 바삭하게 유지하는 기술이다.
한국 식품기업들은 세계적으로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 입맛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최고의 제품과 기술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신제품 출시 주기가 빠르고, 소비 트렌드도 빨리 변하는 매우 민감한 시장”이라며 “그간 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품기업이 쌓아온 기술 역량이 세계시장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