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냄새 나던 밥상은 어떻게 세계인의 '위로'가 되었나 [이혜원의 미디어 속 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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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혜원

사진. ⓒ이혜원

20여 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 한국 음식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국 음식을 경험해본 사람들조차 "마늘 냄새가 강하고 맵다" 정도의 이미지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에 살던 시절에는 그런 시선을 더욱 가까이서 느꼈다. 당시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김치 정도만 알고 있었고, 그것마저도 "굉장히 맵고 냄새가 강한 음식"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일본 음식은 이미 세계적으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특별한 날 먹고 싶은 음식, 꼭 경험해보고 싶은 음식으로 여겨졌고, 해외의 좋은 레스토랑에서도 일본 음식은 굉장히 멋지게 소개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부러운 마음도 많이 들었다. '우리 음식도 언젠가는 제대로 알려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한식을 소개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는 늘 김치 이외의 다양한 한국 음식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불고기와 잡채, 비빔밥과 전, 각종 나물과 국물 음식들까지. 한국 음식이 단순히 맵기만 한 음식이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계절감과 정성, 발효의 깊은 맛, 함께 나누어 먹는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요리수업에서 만난 한식의 힘

나는 오랫동안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식 요리수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처음 수업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긴장과 호기심이 섞인 표정이다. 그리고 거의 빠지지 않고 하는 질문이 있다.

"Is it very spicy?"(많이 맵나요?)

예전에는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면서도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한국 음식 전체가 매운 음식으로만 알려져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날 즈음이면 사람들의 표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만들기 어려운 음식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고 맛있게 만들 수 있다" "매운음식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양한 종류의 한식을 접하게 되어 놀랍다" "한국음식의 매력에 더욱 빠지게 됐다" 등의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

특히 외국인들이 놀라는 부분은 '발효'의 맛이다. 된장과 간장, 고추장처럼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지는 장의 깊은 풍미는 처음에는 낯설어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굉장히 매력적인 맛으로 받아들인다. 수업 중 된장국을 맛본 뒤 된장을 직접 사고 싶다고 묻는 사람들도 많고, 김치를 어려워하던 사람도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만들어보며 더욱 호기심을 가진다.

그중에서도 외국인들이 가장 흥미롭게 느끼는 재료 중 하나는 바로 한국의 간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간장을 모두 같은 맛의 'soy sauce'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국간장과 양조간장, 내가 만든 간장을 일본의 kikkoman 간장을 비교하여 맛보게 하면 전혀 다른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란다. 오래 숙성된 집간장을 맛본 뒤 "마치 오래된 와인처럼 시간의 향이 느껴진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 역시 새삼 한국 장 문화의 깊이를 다시 느끼곤 한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장 문화는 참 놀랍다. 메주를 띄우고, 긴 시간을 기다려 장을 만들고, 계절과 바람, 햇빛과 온도를 견뎌내며 완성되는 맛. 한식의 깊은 맛은 단순히 화려한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기다림 속에서 완성된다. 나는 그 점이 한국 음식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진. ⓒ이혜원

사진. ⓒ이혜원

맛 너머의 언어 — 정(情)

어느 날 요리수업을 마치고 한 외국인 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음식은 참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차리고, 뜨거운 국을 한 그릇 더 떠주고, 고기를 앞접시에 덜어주며 "많이 먹어"를 반복하는 모습들. 한식에는 늘 누군가를 배불리 먹이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외국인들이 특히 인상 깊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반찬 문화다. 한 가지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맛을 함께 나누며 먹는 방식, 그리고 그 음식들이 식탁 위에서 서로 어우러지는 풍경 자체를 굉장히 따뜻하게 느끼는 것 같다. 서양에서는 개인 접시에 담긴 음식을 각자 먹는 문화가 익숙하기 때문에, 함께 나누어 먹는 한국의 식탁은 그 자체로 공동체적이고 정겨운 풍경으로 느껴지는게 아닌가 싶다. 어떤 외국인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한국 음식은 혼자 먹는 느낌이 아니라 함께 먹는 느낌이에요." 나는 그 표현이 참 좋았다.

실제로 한식은 혼자 먹을 때보다 함께 먹을 때 훨씬 더 빛나는 음식 같다. 비빔밥 한 그릇이 여러 재료들의 조화로 하나의 맛을 완성하듯, 한식은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음식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한식은 맛의 조화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를 담아내는 음식인 것이다.

사진. ⓒ이혜원

사진. ⓒ이혜원

드라마와 영화가 차린 밥상

이런 한식의 매력은 최근 들어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더욱 자연스럽게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예전에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음식을 설명해야 했다면, 이제는 드라마 속 장면을 통해 이미 친숙함을 느끼고 찾아오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드라마에서 본 그 음식이 먹어보고 싶어서 왔어요." "배우들이 먹던 잡채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한국에 오면 꼭 먹고 싶었어요." "라면 먹는 장면을 보고 밤마다 라면이 먹고 싶어졌어요." “케데헌에서 봤던 김밥을 실제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실제로 이런 이야기를 수업에서 자주 듣는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속 음식 장면들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화려한 고급 음식보다도 소박한 집밥 장면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늦은 밤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찌개,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먹는 떡볶이, 비 오는 날의 파전, 생일날 먹는 미역국. 그런 장면들 속에는 한국 사람들의 감정과 정서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나는 영화와 드라마 현장에서 음식 작업을 하며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음식은 단순히 화면을 채우는 소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음식은 인물의 감정과 시대,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시대극에서는 그 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먹었을 법한 재료와 조리법, 식기 구성까지 고민한다. 어떤 음식은 화려함보다 투박함이 더 중요할 때가 있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유난히 하얀 쌀밥 한 공기의 따뜻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 현대극에서도 마찬가지다. 음식은 대사 없이도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언어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 맛에서 마음으로

최근 몇 년 사이 한식의 위상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예전에는 한국 음식을 하나하나 설명해야 했다면, 이제는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이미 한식에 대한 친근함과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음식이 단순한 ‘이국적인 음식’을 넘어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추억의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 외국인들이 김치찌개를 그리워하고, 집에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며 한국에서의 시간을 떠올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는 그 변화의 중심에 한국의 미디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와 영화 속 음식 장면들은 단순히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넘어 한국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그 장면들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의 온도와 분위기를 함께 느끼게 된 것이다.

한식의 가장 큰 매력은 어쩌면 화려함보다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함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성껏 끓인 국 한 그릇, 오래 기다려 완성한 장의 깊은 맛, 그리고 서로에게 음식을 권하는 마음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익어가는 한국의 장처럼, 한식 역시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깊게 스며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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