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의 자랑 ‘부숑’을 즐기는 방법[정기범의 본 아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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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범 작가· ‘저스트고 파리’ 저자

정기범 작가· ‘저스트고 파리’ 저자
서울 방문할 때면 노포를 찾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단순히 오래된 가게를 넘어 오랜 시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노포에 가면 주인장이나 가족의 고집과 철학이 느껴지고 옛 향수를 떠올릴 수 있어서다. 이를테면 1937년 대한민국 해장국의 역사를 시작한 청진옥, 1950년에 처음 문을 연 어복쟁반 맛집 평래옥, 광화문 뒷골목의 허름한 김치찌개 전문 광화문집, 1946년 서북관으로 개업해 6·25전쟁 후 우래옥으로 간판을 바꾼 평양냉면 전문 우래옥 등이 나의 ‘최애’ 레스토랑들이다.

문득 고국에서 즐겼던 음식을 떠올리다 리옹의 자랑인 ‘부숑’ 투어를 하고 싶은 생각에 바람처럼 길을 떠났다. 맛의 도시, 리옹에는 ‘프랑스 미식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보퀴즈의 레스토랑을 비롯해서 미슐랭 가이드북에서 별을 단 18개의 파인다이닝이 있지만 적당한 가격의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정식, 부숑이 더 매력적이다. 19세기 무렵 리옹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어머니들은 소나 돼지의 인기 부위보다는 저렴한 부속물, 이를테면 쇠고기의 흉선이나 곱창, 돼지의 간과 부속물 등을 사용한 요리를 내놓았다. 이는 방직물 산업이 발전한 리옹 도심 크루아루스에 거주하던 직공들을 위한 싸고 푸짐한 메뉴로 사랑을 받으면서 부숑은 유명해졌다.

리옹에서 부숑협회의 회원 인증을 받은 22개 레스토랑의 파사드(출입구)에는 리옹의 전통 꼭두각시 인형 ‘기뇰’의 친구이자 쾌활한 성격을 가진 ‘그나프롱’의 얼굴이 그려진 노란 표지판이 손님을 맞는다. 이들 레스토랑은 매일 장을 보고 아이스크림을 빼면 90% 이상을 직접 만들며 냉동제품 대신에 신선한 제철 로컬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부숑협회는 2년에 한 번 이를 엄격하게 체크한다. 실내로 눈을 돌리면 빨간색과 흰색이 교차하는 체크무늬 테이블보가 화사한 인상을 주면서도 오래된 포스터와 벽에 걸린 구리 냄비로 장식된 소박한 인테리어, 그리고 보드판에 쓰인 메뉴가 푸근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리옹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부숑 5곳을 순례하듯 경험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프랑스 명장(MOF) 타이틀을 거머쥔 조제프 비올라가 운영하는 ‘다니엘 드니즈(Daniel & Denise)’다. 담백하면서 쫄깃함이 입안에서 춤을 추는 ‘송아지 머릿고기’와 피스타치오, 블랙 트러플을 넣어 만든 소시지 ‘세르블라 리오네’, 생선살로 만든 반죽인 파나드를 익힌 ‘크넬’, 그리고 디저트로 즐긴 장미향 프랄린 타르트는 다른 부숑에서 먹은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깔끔하고 세련됐다. 부숑협회 부회장인 에마뉘엘 타숑폴리가 운영하는 6구의 ‘쉴리(Sully)’는 쥘리앵 고티에 셰프가 주방을 지휘하며 주로 돼지고기를 사용한 단순하면서 고급스러운 음식을 내놓는다. 매주 바뀌는 점심 메뉴는 전식-본식-후식을 더해도 27유로(약 4만2800원)에 즐길 수 있어 가성비도 좋다.

부숑의 다양한 전통 요리 중 소시지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속재료로 오소리감투(돼지의 위)를 쓰는 내장요리 ‘앙두예트’는 가장 힘든 음식이었고, 훈제 송아지 콩팥 요리의 독특한 식감과 비릿함은 거부감이 들었다. 리옹에서 레스토랑을 제대로 즐기는 팁을 이야기하면,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론과 보졸레 지역의 훌륭한 와인을 함께 결들일 때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정기범 작가· ‘저스트고 파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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