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가 쓴 '연희동 러너'
늦깎이 취준생 주인공 내세워
상처 치유·희망 회복 메시지
출간전 예약판매로 초판 완판
하루키·김연수 에세이도 인기
달리기 서적 판매량 87% 급증
국내 러닝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뜨거운 러닝 열풍이 출판계로도 번지고 있다. 빠른 세태 변화 속에서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는 독자들이 근육과 관절을 정직하게 움직이며 '오늘의 숨'을 되찾는 달리기 관련 서적에 손을 뻗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지방대 출신 늦깎이 30대 여성 취업준비생 '도연희'가 달리기를 접하며 성장하는 소설 '연희동 러너'(임지형 지음·상상스퀘어 펴냄)는 지난달 초 출간된 지 약 두 달 만에 1만부 고지를 앞두고 있다. 출간 전 예약판매로 초판이 완판된 후 2쇄를 거쳐 곧 3쇄를 찍을 예정이다. 일반 소설 독자들에 생소한 동화작가의 작품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반응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비결은 러닝을 절묘하게 녹여낸 쉬운 플롯이다. 주인공 도연희는 타인과 세상에 흔들릴 때 달리기를 돌파구로 삼는다. 취업준비생 때는 앞서 취업 승전보를 울린 친구와 지인의 말에, 직장인일 때는 상사와 동료들의 평가와 질책에 쉽게 흔들리던 그는 달리기를 접하며 자신만의 호흡을 찾는다. 과거와 미래를 헤집던 생각을 정리하고, 오늘의 삶에 차분히 집중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타인의 시선에 취약한 현대인이자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러너 독자들이 임지형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했다는 평가다.
"뛰는 동안은 누구의 말도, 평가도 들리지 않았다. 내 발소리, 숨소리, 흘러가는 시간만이 존재했다. (중략) 세상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느라, 나에게 필요한 리듬을 잃고 있었음을 깨닫게 했다"란 주인공의 독백은 파동이 되어 독자들의 마음에 공명을 일으킨다. 뛰면서 일정한 심박수를 유지하는 운동법인 '존2 러닝' 등 깨알 같은 달리기 지식을 소설에 녹여낸 것도 독자의 이목을 끈 포인트다.
전업작가로서 꾸준한 '달리기'로 심신을 관리하고 이를 집필 동력으로 삼아온 일본의 유명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러닝 열풍의 수혜를 입고 있다. 2009년 출간된 이후 현재까지 87쇄를 찍으며 20만부 넘게 팔렸다. 작가의 이름값에 걸맞게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이지만 코로나19 이후 러닝 '붐'에 힘입어 날개를 달았다는 게 출판계 얘기다. 특히 자기 관리에 관심 있는 MZ세대들이 최근 꾸준히 찾고 있다. 책을 펴낸 문학사상 관계자는 "달리기 열풍이 불면서 탄력을 받았으나, 책의 인기는 단순히 (독자들이)달리기만을 좋아해서는 아니다"며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메시지에 젊은 세대가 반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러너인 김연수 작가의 에세이집 '지지 않는다는 말'도 꾸준히 주목받는 책 중 하나다. 1998년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경험을 주로 다룬 저서에서 김연수 작가는 인생을 달리기에 은유한다. "러너의 가장 친한 친구는 피로이며 절망이다. 그것을 끌어안을 때, 우리는 이완과 휴식과 희망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중략) 결승점은 어떤 경우에도 충만한 상태로 들어갈 수 있는 지점이 아니면서 동시에 그 순간의 충만함은 파기되지 않는다." 위기가 찾아와도 한 발 한 발 내딛다보면 인생의 벽을 넘어 희망을 꿈꾸고 충만함을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다.
출판계에 부는 '달리기' 바람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예스24에 따르면 올 들어 출간된 달리기 부문 신간 서적(실용서적 제외)은 총 40권으로 전년(22권) 대비 81% 늘었다. 2023년 17권에 이어 지속적인 상승세다. 달리기 부문 서적 판매량도 이달 26일 기준 전년 동기 대비 87.5% 늘었다. 예스24 관계자는 "운동 에세이 등의 인기로 최근 지속적인 판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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