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호르헤 파르도 개인전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
회화·설치 등 신작 20여점
갤러리의 화이트 큐브 전시장이 고풍스러운 방으로 변신했다. 바닥엔 알록달록한 카펫이 깔렸고, 천장에 달린 형형색색의 램프(조명)들이 공간을 밝힌다. 월넛의 수납장과 벤치, 벽면의 그림들까지 디자인 가구 쇼룸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쿠바계 미국 작가 호르헤 파르도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다.
호르헤 파르도의 개인전 ‘Jorge Pardo’가 PKM갤러리에서 내년 1월 11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와 드로잉, 행잉 램프, 가구, 카펫 등 일상과 예술의 영역을 아우르는 신작 20여 점이 소개된다. 작품명은 모두 ‘무제(Untitled)’. 관객이 뜻밖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다. 카펫 작품 1점만 에디션으로 2개가 제작됐고, 나머지는 모두 오리지널 작품이다. 그가 한국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지난 2002년 PKM갤러리 개인전 이후 22년 만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단순히 작품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파르도는 실용적인 기능을 가진 작품으로 디자인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허물어온 작가다. 대표적인 것이 램프 작업이다. PETG 소재의 투명한 아크릴 판 25~65장을 층층이 연결해 벌집과 유사한 형태로 제작한다. 기계적인 조립으로 딱딱하게 만들어졌지만 비정형의 곡선과 벌집 같은 둥근 모양이 반복돼 형태적으로는 폭신한 패브릭을 연상시킨다. 모든 오브제는 단 한 점만 존재한다. 저마다 색상과 형태, 장식 등이 조금씩 다르다.
파르도는 “램프는 빛의 근원이기도 하고, 그 빛이 램프 스스로에게도 비춰지고, 그것이 공간을 바꾼다. 이것이 디자인이냐, 순수미술이냐 하는 문제를 떠나 램프는 제가 관심 갖고 있는 미학적인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라며 “사실 (단순히 불을 밝히는) 일반 조명과는 살짝 다른 맥락에 놓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집에서 이 램프 작품을 대체 어디에, 어떻게 놓아야 할지 난감해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일반적인 조명과는 조금 다른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월넛 수납장(152.1×43×161.6㎝ )과 지름 300㎝의 카펫 작품 등도 마찬가지다. 실내용품으로서의 기능을 가진 오브제다. 특히 이들 작품은 파르도가 디자인한 도안을 받아 한국에서 주문 제작한 것으로 디자인 제품과 미술 작품의 경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회화 작품에선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넘나든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작품 이미지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이미지를 소프트웨어로 재구성한 밑그림에 아크릴 마커로 칠해 완성한 작품들이다.
쿠바 아바나에서 태어난 파르도는 미국 패서디나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과 시카고 일리노이대를 졸업했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그는 미국 시카고 현대미술관, 로스엔젤레스 현대미술관과 스위스 쿤스트할레 바젤(바젤 현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18년 프랑스 아를에는 바닥과 벽, 타일, 가구, 샹들리에까지 파르도의 예술 세계를 집대성한 호텔 ‘L’Arlatan’이 개관했다. 가고시안, 빅토리아 미로, 폴라 쿠퍼 갤러리 등 세계적인 갤러리들과 협업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