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첫 개항장 하코다테 야경
오전 6시, 눈이 저절로 떠졌다. 알람을 맞춰 놓지는 않았지만 하코다테 명물인 아침시장(朝市)에 가 보겠다는 생각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창밖을 보니 눈보라가 심하게 치고 있다. 저 눈발을 뚫고 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결론은 고(GO)! 언제 또 저런 홋카이도 눈발을 온몸으로 맞아 볼까나.
하코다테 기차역 주변 아침시장 식당에서는 연어알과 생선회를 비롯한 해산물을 얹은 덮밥(카이센동)을 팔고, 시장에선 홋카이도 북방게와 연어, 굴을 팔고 있었다. 울릉도와 독도가 있는 동해를 마주하고 있는 하코다테의 특산물은 뭐니 뭐니 해도 오징어다. 주문진 항구 노천시장처럼 골목골목 이어지는 수산시장에서는 오징어를 얇게 채 썬 오징어 소면(이카 소멘)이 명물이다.하코다테는 1853년 흑선(黑船)을 몰고 도쿄만(灣)에 나타난 미국 페리 제독이 이듬해 막부 정부와 맺은 ‘미일 화친조약’을 통해 처음으로 외국에 문을 연 항구다. 당시 미국은 왕성하던 포경업(捕鯨業) 전진기지로 하코다테항을 요구했다. 이후 다른 나라에도 문호를 개방하면서 외국 선원들이 밀려들었다. 영국 러시아 영사관이 설치되고, 영국 성공회와 러시아 정교회 회당이 세워졌다. 인천 개항장 거리와 개화기 각국 공관이 몰려 있던 서울 정동길 ‘눈 내리는 교회당’ 분위기와도 비슷하다.
일본과 외세가 최초로 부딪친 경계 지점인 하코다테는 막부 정권 구세력과 메이지 정부 신세력이 맞붙은 치열한 내전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 무대는 별 모양 오각형 요새 고료카쿠(五稜郭). 사무라이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하코다테 전쟁 유적지다.
1864년에 준공된 서양식 보루(성곽)인 고료카쿠는 면적이 도쿄돔 약 5배에 이르는 규모다. 성곽 맞은편 고료카쿠타워에 오르면 해자가 깊게 파여 있는 별 모양 요새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본 최대 서양식 보루 고료카쿠는 1868년 말부터 도쿠가와 막부 탈주병과 메이지 정부군 사이에 벌어진 하코다테 전쟁의 무대가 된다. 구세력 반(反)정부군은 메이지 신정부에 맞서 ‘에조(蝦夷) 공화국’ 건국을 선언하면서까지 맞섰지만 결국 7개월 만에 진압된다.
흥미로운 것은 도쿠가와 막부에 고용됐던 프랑스군 군사 교관 줄 브뤼네 대위와 그의 부하 4명이 반정부군에 합류했다는 점이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2003)에 등장하는 전(前) 미군 대위 네이든 알그렌(톰 크루즈 분)은 브뤼네를 모델로 한 것이다. 이들은 최후까지 막부를 위해 분전한 마지막 사무라이로 소설과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하코다테는 김포공항에서 오전 7시50분 출발하는 일본항공(JAL)을 타고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국내선으로 환승하면 오후 2시경 도착한다. 쓰가루해협을 마주 보고 있는 아오모리로 가기 위해서는 신칸센 하야부사를 타고 세이칸(靑函) 해저터널(총연장 53.85km)을 건너야 한다. 기차역에서 파는 에키벤(駅弁) 도시락을 먹다 보니 1시간여 만에 해저터널을 지나 아오모리에 도착했다.
● 아오모리 원시림 빙폭(氷瀑) 투어
아오모리현 남부에 있는 도와다하치만타이(十和田八幡平)국립공원에 들어서면 아오모리의 뜻이 왜 ‘푸른 숲’인지 실감하게 된다.
해발 400m 도와다산 정상 칼데라호수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길이 약 14km인 오이라세(奧入瀨) 계류(溪流·계곡물)를 타고 흘러간다. 오이라세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여울이 많아진다’는 뜻다. 그 말대로 오이라세 계류는 상류로 올라갈수록 급류가 되어 많은 폭포를 만들어낸다.
도와다하치만타이국립공원 청정 원시림에 자리 잡은 호시노 리조트에서 계류의 물소리에 잠을 깼다. 이 호텔은 벽면 곳곳이 이끼와 빙폭(氷瀑·얼음폭포)으로 장식돼 있다. 복도 벽면 내부에는 물을 주는 장치가 있어 습기에 민감한 이끼가 잘 자란다. 또한 흰 눈이 쌓인 계류를 바라보는 노천온천 주변에는 얼음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가도 가도 끝없던 계류가 갑자기 끝나고 시야가 툭 터진다. 아오모리현과 아키타현에 걸쳐 있는 바다 같은 호수 ‘도와다(十和田)호’다. 호수가 댐 역할을 하고 있어서 오이라세 계류는 1년 내내 흐르는 물의 양이 일정하다고 한다. 계류가 범람하지 않는 덕분에 바위에 무성하게 자라는 이끼를 보러 오는 여행객들 발걸음이 이어진다.
오이라세 계류에서는 태풍이나 폭설에 나무가 쓰러져 계곡을 덮쳐도, 쓰러진 나무를 치우지 않는다고 한다. 쓰러진 나무는 자연스럽게 작은 짐승들이 넘어 다니는 다리가 되고, 그 나무에서는 또다시 이끼가 자라난다. 겨울철 야간에 폭포를 탐험하는 ‘빙폭 라이트 업 투어’도 국립공원이라 전기시설을 설치할 수가 없어 대형 LED등(燈)을 실은 이동식 조명차가 따라다닌다.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얼음폭포를 감상하는 아이디어인 셈이다.
8월 초 열리는 아오모리 축제인 ‘네부타 마츠리’는 매년 약 300만 명이 찾는 대표적인 지역 축제. 그 해 가장 잘 만든 것으로 뽑힌 전통 등불수레는 아오모리역 근처 ‘네부타의 집 와랏세(WARASSE)’에 상설 전시된다. 미사와에 있는 ‘호시노 리조트 아오모리야’에서는 네부타 마츠리를 테마로 한 노천 온천이 있고 관련 공연도 펼쳐진다.
글·사진 하코다테·아오모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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